언젠가 나도 아버지가 되겠지.

by 이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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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꼭 집에 놀러 오신다. 무슨 날도 아닌데, 딱히 하실 말도 없이 오신다. 도착하자마자 별말도 없이 휴대폰을 보시다가, 잠깐 앉아 계시다 졸리면 방 안에서 주무신다. 별일 없이 오시고, 별일 없이 머물다, 별일 없이 가신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불편하다. 원래 그렇지도 않으셨다. 젊은 시절의 아빠는 친구분들과 놀러 다니시는 걸 좋아하셔서 우리 곁에 자주 없었다. 아빠가 필요할 때는 곁에 없다가 이제 사회생활과 육아에 바쁜 나의 일상에 들어오시는 게 귀찮았다. 아니, 어쩌면 핑계다. 나는 예민한 기질이라 내가 짜놓은 루틴화된 일상에 끼어드는 누군가의 '계획 없는 방문'은 나의 리듬을 흔들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그게 가족일지라도.


불편한 마음은 고스란히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나쁜 자식 같아.’ 스스로를 타박한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도 없다. ‘세 달에 한 번쯤이면 좋겠어요’ 같은 말은 마음속에만 갇혀 있고, 입 밖으로는 못 나간다. 눈치를 못 채신 건지, 애써 모른 체하시는 건지, 아버지는 꾸준히 한 달에 한 번 오신다. 이런 나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도 나이 들면 똑같을까?’ 나도 아무 약속도 없이 아이들 집에 찾아가고 싶어 질까. 자식 얼굴 한번 보려고 괜히 장을 보고, 김치를 담가서 들고 가고 싶어 질까. 나도 그때가 되면, 지금의 아버지를 조금 이해하게 될까.


며칠 전, 큰딸에게 슬쩍 물어봤다. “나중에 엄마가 보고 싶다고 그냥 찾아가면 어떨 것 같아?” 딸은 곧장 이렇게 말했다. “음, 나는 괜찮은데… 남편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물어봐야겠지.” 당연히 봐야지,라는 입바른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솔직하다니. 역시 엄마딸이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냉정하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그게 맞는 거지. 함께 살아갈 남편 마음을 먼저 살펴야 똑같이 배려받을 테고, 그래야 우리 딸도 행복하지 않겠어.” 그 말을 내 입으로 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묘하게 시렸다. 조금씩 자기 생각이 생기는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쓸쓸했다. 내가 딸에게 가르친 방향이 결국 나를 향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사실 인간의 관계는 늘 이런 균형 위에서 위태롭다. 사랑하면서도 불편하고, 배려하면서도 거리감이 생긴다. 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는 이유도 어쩌면 단 하나일지 모른다. “보고 싶어서.” 그 마음 하나로 매달 한 번씩 이 먼 길을 오신다. 그 마음은 헤아리면서도 근데 그게 꼭 사랑처럼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피곤하고, 반복되고,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각진 사람이 된 걸까.


이따금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 내가 불편해하는 아버지의 방문은, 미래의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면 지금의 내 불편함은, 그때의 내 쓸쓸함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래. 사람의 감정이 늘 일관되지는 않다. 사랑하면서도 귀찮고, 보고 싶으면서도 피하고 싶은 이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모순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저 조용히 마음을 다잡는다. 아버지를 향한 마음도, 딸을 향한 바람도,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서운해도. 어쩌면 이 모든 건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 서툴고,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애틋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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