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이야기를 미래로 보내는 진심

사진

by 이손끝


ChatGPT Image 2025년 8월 12일 오전 10_07_38.png


사진(寫眞). ‘참모습을 베껴 둔다’는 뜻의 한자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남겨두는 일, 그 순간을 훔쳐 미래로 보내는 진심.


내 어린 시절은 이 ‘참모습’이 없다.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엄마가 사진들을 불태우고 찢어버렸다고 한다. 함께한 삶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은 알겠지만 왜 사진에 화를 풀었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불타고 흩어진 건 종이였지만, 그 속엔 나라는 아이의 웃음과 눈빛, 손짓이 함께 사라졌다. 아빠는 내가 참 예쁘게 생겼었다고 말하지만, 사진이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다.


그 때문인지 나는 사진에 집착이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저장하고 공유는 하지만, 인화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사진 출력 앱을 통해 일정 기간의 사진을 모아 앨범을 만든다.


우리 신랑과 연애하던 시절부터 첫째 아이를 임신해 배가 불러오고, 아이가 태어나고, 커가는 과정까지 모두 앨범 속에 있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셀카처럼 얼굴만 나오게 찍은 사진은 나중에 추억하기에 생각보다 힘이 없다. 웃고 있더라도 그게 어디였는지, 어떤 날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한 한 배경과 함께 전신사진을 찍는다. 어디를 갔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한 장에 담으려고 한다.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 가족을 풍경과 함께 찍는다. 그 안에는 "그날"의 온도와 공기가 묻어 있다.


내 사진 철학이 있다. 못난 표정이어도 좋고, 숨기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사진이어도 좋다. 사진에는 꼭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언젠가 아이들에게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앨범을 나눠야 할까 고민도 한다. 언젠가 결혼해서 따로 살게 되면 각자의 앨범을 가져가 추억할 테니까. 그렇다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은 누구의 앨범에 넣어야 할까? 결론은 두 장을 출력하는 것이다. 한 장은 큰 아이 앨범에, 한 장은 작은 아이 앨범에. 나눌 수 없는 기억이니, 나눠서라도 가지게 하고 싶다.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사진이 담지 못하는 표정과 목소리, 몸짓이 다 들어있으니 그 소중함이 다르다. 동영상은 따로 컴퓨터 폴더에 보관하고 있다.


가끔 꺼내보면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는 걸 느낀다. 10년 전의 남편은 그렇게 날씬했고, 흰머리도 없고, 꽤 잘생겼는데, 그땐 왜 그리 관리를 안 하느냐고 구박했을까. 사진 속의 그는 늘 나를 바라보거나 아이를 안고 웃고 있다. 그걸 보면 이상하게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진은 그렇게 우리를 과거로 데려간다. 한 장의 사진이 그날의 대화, 그날의 냄새, 그날의 하늘을 모두 꺼내온다. 어릴 적 내 사진이 없다는 결핍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더 부지런한 기록자로 만들었다. 나는 오늘도 스마트폰 앨범을 훑으며 ‘다음에 출력할 것들’을 폴더에 모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언젠가 아이들이 먼 훗날 이 앨범을 펼쳐봤을 때, “우리 부모님은 나를 참 사랑했네” 하며 웃을 수 있도록, 그 속에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참모습 그대로 남겨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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