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시 사람의 자리로

본질(本質)

by 이손끝

본질(本質) :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네이버 블로그의 운영에 대해 한동안 길을 잃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빠르고 효율적인 길'이라는 유혹에 눈이 멀어 길을 잃고 있었다. 정보의 바다인 네이버 블로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무기는 AI였다. 기계가 정돈해 준 문장들은 매끄러웠고, 내가 수 시간을 들여야 할 정리를 단 몇 초 만에 끝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다듬는 일에만 시간을 할애했다. 알고리즘은 그것을 잘 받아들였고 나는 2년이 넘게 기계적인 운영을 계속했다. 그것이 '효율'인 줄 알았다. 하지만 효율의 대가는 참혹했다. 어느 날, 블로그 지수는 폭락했고, 내가 공들여 쌓아 온 공간은 생기를 잃어갔다.


무너진 자리에서 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상위에 살아남은 블로그들을 분석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더 잘 쓴 것 같아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 집착의 마음 때문에 본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한동안 방황했다. 하지만 이대로 플랫폼을 원망하고 있을 순 없는 일이었다. 고집을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블로그들의 공통점이 보였다. 매끄러운 글이 아니었다. 거기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블로그를 운영하던 때의 수년 전의 글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직접 말하듯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바로 본질이었다.


나는 '본질(本質)'이라는 단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본질의 '본(本)'은 나무의 뿌리를 형상화한 글자다. 겉으로 드러나는 무성한 잎보다 중요한 것은 땅속 깊이 박힌 뿌리의 생명력이다. 내가 효율이라 믿고 써낸 AI가 만들어낸 글은 화려한 조화(造花)와 같았다. 겉모양은 완벽하지만, 살아있는 뿌리가 없으니 향기도, 성장도 없었다. 이런 글을 읽을 바엔 차라리 AI에 직접 묻는 나을 것 같은 정보였다. 반면 직접 쓴 서툰 포스팅은 비록 모양새는 투박할지언정 내 삶이라는 대지에 깊이 뿌리내린 진짜 나무였다.


본질의 '질(質)'은 꾸밈없는 바탕과 타고난 성질을 뜻한다. 우리는 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더 깔끔하고 세련되게 자신을 포장하려 애쓴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알고리즘조차 간파해 낸 진실은 하나였다. 사람들은 '정리된 정보'를 보러 왔다가, 결국 '그 글을 쓴 사람의 결'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직접 찍은 조금 흔들린 사진, 문맥이 매끄럽지 않아도 진심이 툭 튀어나오는 문장. 그 속에 담긴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바탕이 바로 독자들이 원하는 진짜 질감이었다.


지수 폭락은 나에게 쓰라린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본질로 돌아가라는 경고등이었다. 기계가 쓴 글은 지식은 전달할 수 있어도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나'라는 유일무이한 존재의 온기는 오직 나의 손가락 끝에서, 나의 시선이 머문 렌즈를 통해서만 전달된다.


나는 템플릿을 모두 삭제했다. 그리곤 내가 직접 쓰기 시작했다. 다시 직접 사진을 찍고, 느리더라도 한 자 한 자 나의 언어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죽어있던 공간에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투박함 속에 깃든 진심이 알고리즘보다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린 것이다. 진짜 글을 읽은 이웃들의 댓글이 달렸고, 블로그 유입도 다시 조금씩 들어오는 게 보였다.


결국 블로그라는 공간이란, 그리고 우리의 삶이란 '나'라는 본질을 증명해 가는 과정이다. 아무리 세상이 빨라지고 AI가 정교해져도, 나무의 뿌리(本)와 사람의 바탕(質)을 대신할 수는 없다. 나는 오늘도 조금은 서툴고 느린, 하지만 가장 나다운 온기가 담긴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 본질은 결코 화려함에 있지 않고, 오직 살아있는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이제는 믿기 때문이다.


효율이라는 익숙함을 벗어던지고 한 자 한 자 타이핑을 하는 내 모습이 수년 전 내 모습이었다는 걸. 이게 진짜 본질이었다는 걸 이제라도 깨달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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