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데리고 잘 살고 있는가?

자기애(自己愛)

by 이손끝

자기애(自己愛). 스스로 자(自), 몸 기(己), 사랑 애(愛).




자기애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낯설다. 나는 한 번도 나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유약하고, 예민하고, 큰일 앞에서 자꾸만 주저앉는 내가 싫었다. 남들처럼 단단하지 못한 성격도, 거울 속 마른 몸에 창백한 낯빛의 얼굴도 못마땅했다. 그래서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배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제발 엄마를 닮지 말라고. 성격도, 외모도, 마음의 결도.


나는 아이들에게 무심코 말했다. “엄마를 닮으면 절대 안 돼.”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 말은 내 안에서 오래 굴러다녔다. 그 문장이 혹시 나뿐 아니라 아이들의 세계까지도 쪼그라들게 하는 건 아닐까, 나를 부정하는 언어가 아이들 안의 어떤 부분까지 함께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데리고 잘 살고 있는가?


어느 날 이 문장을 만났다. 짧은 문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 내 영혼의 모양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고, 지금의 나는 그 영혼을 데리고 살아가는 하나의 육체에 불과하다는 생각.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대하며 살고 있는가. 한 발 떨어져 나를 바라보니 익숙한 장면이 보였다. “넌 왜 그 모양이니?” “왜 그것밖에 못해?” 끊임없이 다그치고 타박하는 목소리. 만약 내가 나의 어머니라면, 저런 말을 매일같이 듣는 아이를 바라보며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까. 나는 나를 가장 혹독하게 키우는 보호자였다.


자기애란 거창한 자존감의 선언이 아니라, 나와 다정하게 동거하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내게 없는 모습만을 강요하며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 내가 나를 사랑으로 본다면, 나의 장점은 무엇일까. 나는 쉽게 상처받지만, 그만큼 남의 아픔에도 예민하다. 나는 큰일 앞에서 겁을 내지만, 작은 마음의 떨림은 누구보다 잘 알아챈다. 나는 빠르게 달리지 못하지만, 대신 오래 생각하고 깊이 파고든다. 만약 내가 나의 편이라면 이렇게 말해주지 않을까. “그래, 그게 네 모습이야. 괜찮아. 대신 너는 이걸 잘하잖아. 이 길로 가보자. 천천히 가도 돼. 넌 할 수 있어.”


자기애(自己愛)는 나를 과장하는 사랑이 아니라, 나를 외면하지 않는 사랑일 것이다. 나와 다정하게 잘 사는 것. 실수해도 등을 돌리지 않고, 넘어져도 손을 내미는 것. 아이들에게 더 이상 “엄마 닮지 마”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엄마는 이런 사람이야. 약한 부분도 있지만, 이런 건 잘해. 너도 너를 잘 데리고 살아.” 이제는 나를 사랑하며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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