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운 Feb 01. 2024

희수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무 이유 없이 반에 서 따돌림을 당했던 친구가 있었다. 희수라고 부르겠다. 아이들은 그게 잘못된 걸 알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랬는지 나서지 않았다. 나 또한 그랬다. 남의 인생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앞에서 걸어가는 희수를 봤다. 그날 무슨 용기가 났던 건지 뛰어가서 말을 걸었다. 


"너도 학교 걸어 다녀? 아, 맞다. 나 너랑 같은 반이야." 

"알아, 너 동방신기 좋아하잖아." 

"어떻게 알았어? 너도 좋아해?" 

"난 재중이 좋아해."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가 학교 앞 골목에 다다랐을 때, 희수가 나를 빤히 보더니, "여기서부터는 나랑 떨어져서 걸어. 너도 오해 받으니까."라고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런 게 어딨어? 카시오페아는 하나잖아. 우리는 오빠들처럼 당당해져도 돼."라고 말하면서 희수의 손을 잡고 교문으로 걸어 갔다. 그 이후, 나와 친했던 무리에 희수를 데리고 왔고, 우리는 꽤나 친해졌다. 졸업 후 내가 유학을 가면서 많은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고, 그 애도 그랬다. 그렇게 드문드문 생각이 나던 친구였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어느 3월, 희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지내니? 나 희수야. 겨우 너를 찾아서 이렇게 연락해. 고등학생 때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 너뿐인데 오늘따라 갑자기 네 생각이 나더라. 지금 와서 갑자기 말하는 게 뜬금없지만 꼭 말해주고 싶어서. 네가 그때 나한테 걸어준 말 한마디 덕분에 17살을 버틸 수 있었어.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사회에서 못된 사람들을 만났을 때마다 너를 생각했어. 너처럼 따뜻한 사람들도 많으니까 견딜만하다고... 하는 일마다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 널 위해서 항상 기도할게. 너무너무 고마웠어.


그날 나는 어릴 때의 나를 만났다. 희수의 기억 속 나는 분명 따뜻한 사람이었을 텐데 지금은 누구보다 모난 사람으로 변한 내 모습에 괜히 미안해졌다. 오래도록 간직하고 기억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 잊지 않고 이렇게 말해줘서 지금의 내가 너에게 도움받는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기억에 힘을 얻어서 잘 살자고 약속하는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