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가증스러운 말인지 작가가 되면 알 수 있는 거니?"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서로 완벽히 이해하는 건 소설 속에서나 있는 일이야. 우리는 사회화된 동물이니까 이해하는 척하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강아지처럼 한없이 사랑해서 이겨내거나, 미친 듯이 미워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막힘없이 술술 답장을 보냈다. 틀어 놓은 드라마에서는 시몬이 마이클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브렌트가 쓴 이 책은 사람들을 물건 취급하고, 여성 혐오, 인종 차별적이에요. 왜 굿 플레이스에서까지 이딴 걸 겪어야 하죠? 브렌트 같은 사람들은 얼간이로 살아도 되고, 어째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늘 용서를 강요받는 거죠?"
"그러면 차라리 이해한다고 말하지 말지. 인간은 너무 가증스러운 동물이야. 타인을 생각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거든. 커피라도 사 주고 싶은지 아닌지 말이야. 이 짧은 생을 위해서 이렇게까지나 노력하는 내가 하찮고 우습게 느껴져." 지하철 안에서 백예린의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안아 주러 나가고 싶었다.
"누구나 그런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아? 너는 오히려 다행이지.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 커피 한잔 대접하고 싶은 마음을 기준으로 네 마음 안에 들어온 사람과 내보내고 싶은 대상이 구분된다는 게 얼마나 간결하고 편하니? 우리 삶의 점수를 저절로 매겨 주는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닌 이 세상에서 말이야. 내 기준은 내일이 궁금하지 않은 거야. 최근에 어떤 사람의 일상을 듣고 싶지 않아서 정리했거든. 계속 옆에 있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느냐 마느냐를 기준으로 세웠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얼마나 건방진 생각이었는지 알게 됐어. 내가 마음먹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 상대방이 그걸 고마워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였지. 그 사람이 그걸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 옆에 계속 두고 싶다? 영영 짝사랑하는 거야. 상처받아도 참으면서 계속 눈을 감는 거야."
대답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전등을 껐다. 자고 일어났더니 연락이 와 있었다.
"네 답장 무지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