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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Feb 19. 2024

반찬 다섯 팩

나를 향해 달려온다. 늘 환한 웃음. "나 오늘 언니 만나서 정말 행복해." 바스러지게 끌어안아 주는 두 손. 강한 빛을 한참 바라본 뒤에 눈을 감아도 그 빛의 잔상이 남아 있는 것처럼 저 밝은 미소는 참 오래간다.

"밥 먹었어?"

오후 다섯 시 반인데도 한 끼도 안 먹었단다. 한 달 내내 삶은 양배추와 배추김치만 먹었다고 했다. 길 건너편에 만둣집이 보였다. 날이 부쩍 추워진 탓에 흘러나오는 하얀 구름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저 만두라도 손에 들려서 보내야겠다 싶었다. 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현금을 준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반찬 통 몇 개를 챙겨서 나왔다. 모임이 끝나고 약속이 없다는 애를 데리고 망원시장으로 갔다.

"언니, 여기는 왜 왔어요?"
"있잖아, 오늘 아침에 반찬 통을 가져왔어. 여기에 네가 먹을 반찬 사서 담아 주려고. 이거 다 먹으면 반찬 통 나한테 돌려 줘. 그럼 또 그거 들고 망원시장에 오자."

그 애가 운다.

"야! 울지 마. 지금 울 시간 없어. 반찬 고르러 가자.“

연근조림, 진미채, 달걀 장조림, 잡채 그리고 매운 콩나물무침을 샀다. 5팩에 2만 5천 원이다. 내 책 두 권 값.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나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 언니 정말 고맙고 미안해요."

반찬을 양손에 들고 망원시장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려고 섰다. 사람 많은 망원역 사거리에서 고맙고 미안하다며 울었다.

"이건 네가 열심히 살아서 내게 돌려줄 거니까 고마워할 필요도 없고, 미안해할 일도 아니야. 그동안 네가 나를 만날 때마다 진심으로 만나서 행복하다고, 기분이 좋다고 표현해 준 그 따뜻한 마음들 그대로 돌려주는 거야. 너도 다른 사람이 힘들 때 똑같이 나눠 주면 돼."

바스러지게 꽉 안아 줬다.

"나는 이제야 내일이 기다려지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너도 나랑 같이 내일을 기대해 보자…. 외롭거나 우울하면 언제든지 전화해. 늦은 밤이라도 달려올게."

아침에 엄마가 챙겨 준 5만 원을 꺼내서 내밀었다. "우리 엄마가 너 주래. 이 돈 내 거 아니야, 네 거야." 언니답게 씩씩하게 말하면서 같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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