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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Feb 22. 2024

경력 보유 여성

오늘 엄마의 첫 출근 날이다. 34년 만에 다시 간호사로 일하게 된 엄마에게 온 메시지.


타자 연습해야 해.
독수리 타법 아웃.     

귀엽고 대견했다. 내가 처음 취업했을 때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는 회사에 처음 출근했던 날 도망가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었다. 꿈 깨라는 엄마의 답장을 보고 한숨을 쉬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그 기억을 떠올리며 엄마의 이직 준비를 도왔다. 채용 사이트에 가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력서 작성을 하면서 오만가지 감정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내가 태어난 해에서 멈춘 엄마의 마지막 경력. 다시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저녁이 떠올랐다. 이모는 엄마에게 어릴 때 배운 거 지독하게 써먹는다고, 지금이라도 다시 일할 수 있어서 잘됐다고 했다. 나도 기뻤다.      

“안 까먹었나?”
“생생하다. 시스템이 다 전산이라 프로그램만 배우면 된단다.”
“금방 배우겠지, 엄마는 다 잘하잖아.”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28살에 수간호사가 된 천재였다. 그 결혼만 하지 않았어도 모든 병원 관계자가 알 만한 능력자가 됐을 것이다. 알고 있었다. 아직도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엄마를. 나의 미래 때문에 포기했던 엄마의 현재를. 긴 공백을 가지고 있음에도 일주일 만에 네 군데 중 한 곳으로 바로 출근했다.     

“그 면접관은 나를 보자마자 바로 간호과장까지 할 생각 있냐고 묻더라.”     

하루 만에 완벽하게 적응해 내고 모든 동료의 호감을 얻은 엄마는 벌써 미래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지독한 일 욕심은 다 엄마를 닮은 거였다. 첫 출근 후기를 들으면서 아침밥을 차리려면 여섯 시 반에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 타자 연습도 도와주기로 했다. 효율적으로 타자를 연습하기 위해서는 여러 타자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사용하기 편하면서도 엄마에게 효과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무래도 어린이용 공룡 타자 연습 웹사이트가 나을 듯해서 내가 먼저 해 봤다. 노안 때문에 키보드에 적힌 글씨와 모니터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 엄마가 작은 글씨의 화면을 보면서 연습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중장년용 키보드와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지 궁금해져서 인터넷에 ‘어르신 타자 연습’이라고 검색했고, 충청북도에서 진행한 디지털 배움터 어르신 타자 대회에 관한 기사를 찾았다. 디지털 배움터의 검색 결과에 기관에서 강사로 일하시는 분의 연락처가 있어서 바로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디지털 배움터 강사님 전화번호 맞나요?”
“네, 그런데 지금은 휴강 기간이에요.”
“한 가지 여쭙고 싶은데요. 엄마가 재취업을 하게 돼서 타자를 배워야 하는데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셔서요. 혹시 어르신용 프로그램과 타자기를 따로 사용하시나요?”
“일반 키보드 사용합니다. 컴퓨터에 있는 한컴 타자 연습에 들어가셔서 비율을 150%로 조정해 보세요.”
“고맙습니다.”
“어머니께 응원한다고 전해 주세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엄마의 퇴근이 다시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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