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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Feb 26. 2024

알뜰폰

걸어가는 이름 모를 할머니를 보고 서글퍼졌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지난 가을은 한없이 다정했고 잔인했다. 책이 잘되고 있다는 소식을 받자마자 할머니가 암이라는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손쓸 수 없는 암. 평생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할머니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병명을 손에 쥐었다.

할머니를 3년 동안 보지 않았다. 아빠에 대한 원망 때문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 큰 바다를 사이에 두고도 이틀에 한 번은 전화하던 착실한 큰손녀였다. 전화를 받은 날 바로 부산행 기차표를 끊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노란 얼굴을 하고서 내게 말했다.

"그래도 아프니까 내 보러 오네."

보고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얼굴들을 마주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차라리 할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그러면 아빠를 다시 보지 않아도 되니까. 나를 이런 괴물로 만든 아빠는 매정했던 나 때문에 자신의 엄마가 아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이 가진 모든 마음을 퍼부어 줬다. 손녀와 손자를 여섯 명이나 둔 할머니 머릿속에는 오직 나뿐이었다. 유학 당시 스카이프로 할머니랑 전화하던 중 남아 있는 요금을 다 써서 끊긴 적이 있다. 전화 카드를 충전해서 다시 전화를 걸면 되는 일이었지만, 새벽에 나를 덮쳐 누른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 할머니는 내게 전화기 앞에서 하염없이 두 시간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 이후론 할머니가 전화기를 내려놓을 때까지 늘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좋았다. "할머니!"라고 부르면 어김없이 "밥뭇나."라고 하던 부름이 좋았다. 오늘 있었던 얘기를 재잘재잘 떠들면 무심한 목소리로 "맞나."라고 말하던 대답이 좋았다.

할머니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두 달이 흘렀다. 요즘 세상에 핸드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신용불량자인 아빠는 요양병원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알뜰폰 하나 제 명의로 못 만들어 주는 예순의 아들이다. 할머니가 내게 물었다. 네가 만들어 줄 수 없느냐고. “미안해, 할머니.” 며칠 전, 동생이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그 사람이 또 내 돈을 빼갔나 봐. 또 내 명의로 무슨 짓을 했나 봐." 알고 보니 동생이 얼마 전 들어 놓은 주택청약 자동이체였다. 우리는 안심했다.

얼마나 더 많은 글을 써야만 이 소재로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을 내면서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고인 물이 생겨나고, 남은 그림자가 연이어 다음 글까지 흘러들어 온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우리도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흔히들 말하는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의 일원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나는 어디 가서 늘 사랑만 받고 자란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마음을 책으로 읽으면서도 차마 상상조차 못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아빠는 내게 서른이 넘었으니 얼른 결혼하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엄마처럼 남자 잘못 만나서 인생 망치기 싫어. 그래서 결혼하기 싫어."라고 했다. 부산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운전했다. 나는 안다. ‘씨발’이라고 욕했을 아빠의 속을. 겉으론 침묵해야 하는 아빠의 남은 삶을. 김 씨가 아닌 자식들을 대하는 아빠의 사뭇 달라진 태도를. 내가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서 걸어오는 이질적이고 다정한 전화를. 늦은 밤 그리움에 가득 차 남긴 그 역겨운 부재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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