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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Feb 05. 2024

하늘에 가득 남은 여운

우연히 마주한 불꽃 축제를 앞에 두고 주변을 둘러보니 촬영에 푹 빠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옆에 계신 중년 여성분도 팡팡 터지는 불꽃을 열심히 담아내고 있었는데 조금 이상했다. 왜 빨간 버튼이 떠 있지? 계속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눈이 마주쳤다. 자수가 놓인 면 마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마스크가 참 예뻐요."
"고마워요, 내가 만들었어요."
"솜씨가 뛰어나세요! 그런데 제가 옆에서 잠깐 봤는데 촬영 버튼을 안 누르셨어요."
"아!"
"여기 빨간 거 보이시죠? 이걸 눌러야 녹화가 시작돼요. 사진첩 한 번 들어가 보실래요?"

서툰 손짓으로 들어간 사진첩은 식물과 지인으로 가득했다. 예상대로 불꽃 사진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하나도 안 찍혔다고 했더니 손뼉을 치며 아쉬워하셨다. 다행히 아직 찍을 게 많으니 방금 알려드린 대로 한번 해보자고 했다.

00:00:01

안전하게 뜨는 상단의 표시. 녹화된 비디오를 재생해 보면서 함께 웃었다. 자식들이랑 떨어져 살아서 한 번 잊어버리면 다시 물어볼 곳이 없고, 주변에 물어보자니 마주하는 시선들이 두려워 차라리 모르기로 했다고 하셨다.

좁아진 마음처럼 적은 핸드폰 공간 때문에 더 녹화할 수 없었다. "찍은 영상 보내드릴까요?"라고 했더니 선뜻 번호를 알려주셨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찬란했던 불꽃놀이 후, 숙소로 돌아와 잘 나온 영상들로 골라서 문자를 보냈다. 한참 뒤에 도착한 답장.

아가씨, 감사합니다.

다가가는 것을 좋아해서 말을 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디 가서 당당히 물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모른다고 해서 무시당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어서. 나에게는 내가 더 무시해 줄 대담함과 받아칠 정보들이 머릿속에 차고 넘치지만, 어르신들은 속절없이 당해야만 하니까. 이 모든 것들은 노인이 된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훗날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도 이런 사소한 또는 작은 친절이 만연하기를 바라며 오늘도 친절을 마음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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