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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Mar 28. 2024

잔잔하게 웃을 일

윤에게 줄 선물을 사러 딸기 책방에 갔다가, 솜이와 같은 얼굴과 사연을 가지고 있는 강아지를 만났다. 말이 많고, 겁도 많은 강아지. 똑같은 상처가 있는 강아지.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나. 상처를 품고 있는 동물을 마주할 때면 어쩐지 주눅이 든다. 너도 도와주고 싶고, 그 옆의 너도 도와주고 싶어. 그러려면 내가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서 미안해서. 풀어진 생각을 손에 쥔 채 책장을 훑다가, 어둡지만 밝은 그림책을 찾았다. 사장님이 추천한 다른 책을 내려놓고 이 책을 골랐다. 정윤과 내가 어두웠던 기간을 함께 헤쳐 걸어온 것과 닮은 책이다. 넘쳐 났던 눈물을 뒤로하고, 나는 어떤 조각을 찾으러 강화에 왔을까. 이곳 강화는 정적이면서 활기차다. 그래서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다.

숙소에 머무는 동안 오후 열 시마다 진행되는 회고 시간에 꼭 참여해야 했다. 다 같이 모여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 열댓 명이 하나의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마음에 남는 문장이 무엇이었냐는 마지막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듣고 나서야 대답했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말이요.”     


글을 쓰러 왔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나를 괴롭히러 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망설여졌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혼자 온 여행객의 특권을 누리며 책을 읽으면서 소주를 마실 때도, 읽던 책이 머금은 눈물이 소주를 넘어서 내게 닿았을 때도, 나만 느끼지 못하는 투명 망토가 내 정수리 위를 덮었다. 나는 언제든 그 망토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할 수 있었지만 절대로 벗지 않았다. 작가라는 선입견은 내게 방패가 되었으니까.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같은 방에 자는 사람들에게 끝도 없는 관심을 가지는 나를 보며, 지금의 나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떠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함께 방을 쓴 세희와 며칠 동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고 속 얘기를 하고 싶었다. 세희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하며 사는지에 대한 간단한 질문조차도 네 번의 질문을 통해서 대답했다. 명확하게 긋는 선이 그와 나 사이에 놓였고, 남은 밥을 다 먹는 동안 더 질문하지 않았다.


영인이 주차된 차를 빼고 싶다고 뒤를 봐 달라고 부탁했고, 세희와 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화장실이 급해서 볼일을 해결하고 오겠다고 말했다. 다시 주차장으로 가려던 나는 거실의 큰 창을 통해 금세 세희가 떠나는 뒷모습을 봤다.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는데. 며칠 동안 같이 밥 먹은 정이 있었기 때문에, 미련이 잔뜩 묻은 작별 인사 한마디 정도는 하고 싶었는데. 겨우 사흘 알고 지낸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서운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아쉬운 마음을 끌어안고 내일 떠날 짐을 정리하다 보니, 다이어리 뒷면에 모르는 엽서가 한 장 끼워져 있었다.      


따뜻한 미소가 예쁜 !      

덕분에 함께 맛있게 잘 여행하다 갑니다.

올봄은 힘든 일보단 잔잔히 웃을 일이 더 많길 바라요.

그럼 안녕히 계시길 바라며...      

아삭아삭 순무민박 룸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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