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운 May 23. 2024

깊은 꿈, 깊은 사랑

꿈을 꿨다. 여행 간 친구의 집에 솜이와 함께 놀러 간 날이었다. 그 동네에서 자주 놀았지만, 친구의 집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근처에 사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바람이 살랑 부는 여름밤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꿈인 줄 알면서도 얼마나 신났는지 들뜬 내 마음이 가까이 보였다.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아주 오래전에 자주 입던 민트색 스커트를 입었다.


약속 장소에 가까워지는 순간, 문득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솜이에게 요즘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재능이 생겼다. 눈을 감을 때마다 그게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약속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나는 두려움에 가파른 언덕길을 다시 올라갔다. 아파트 현관문 사이로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귓가에 솜이의 낑낑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단숨에 4층으로 올라갔다. 도착한 줄 알았는데 또 새로운 계단이 나타났다. 이번엔 하수구 냄새가 진동하고, 손잡이도 모두 낡아서 만질 수가 없었다. 양쪽 무릎을 짚으며 빠르지만 느리게 올라갔다. 아무리 걸어도 계단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꿈 밖의 내가 땀을 흘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신발에 구멍이 나서 맨발로 올라가야 했다. 그 와중에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솜이를 구하러 가야 했다. 오늘 약속 시간에 늦더라도,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솜이가 안전하게 있는지 내 눈으로 봐야만 했다.


드디어 현관문이 보였다. 터벅터벅 걸어가면서도 솜이의 이름을 불렀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순간 잠에서 깼다. 솜이가 눈을 꿈뻑꿈뻑 감았다가 뜨면서 내 얼굴을 핥았다. 아침이 왔다고.

이전 16화 잔잔하게 웃을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