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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ul 13. 2024

너는 사랑이었나

 집 근처에 스타벅스가 두 개나 생겼다. 유명했던 대안학교의 폐교가 결정되고, 허허벌판이던 동네에 대기업과 대학병원이 들어섰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나만 두고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나는 요즘 죽은 과거 속에 산다. 글을 쓰다 보면 진작에 흘려보낸 관계까지 파헤치게 된다. 애써 잊고 살았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이미 사라지고 없는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배신감. 나는 걔가 괘씸했다.


   우리는 수없이 재회했다. 갓난 아기때부터 함께였으니 나만큼은 이해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 애는 언제든 다른 존재를 이유로 내게 등을 돌렸다. 내게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지만, 그 남자들에게는 무수한 기회가 주어졌다. 그 남자들은 아무리 개차반으로 굴어도 나보다 먼저였다. 남들은 진작에 다 떠난 도박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그 사실을, 그 애의 뺨을 때리고 돌아서는 성수 한복판에서 깨달았다. 내 우정은 이길 확률 없는 패였고, 평생 보듬은 우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지금 사랑하는 남자가 나보다 우선인 걸 알면서도 지독하게 외면한 결과였다.


   내 한마디로 우리는 끝났다. 내 손으로 맺은 지저분한 끝을 후회했다. 이렇게 해야만 괴로운 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꺾이지 않을 내 모든 다짐을 수포가 되게 만든 그 맹목적인 충성에 배신감을 느꼈다. 그 애의 '남자에 미친 사랑'이 미웠다. 이 모든 미움을 가지고도 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접지 못했다. 그 애는 한동안 끊임없이 꿈에 나왔다. 계속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나는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꿈속에서 모두 쏟아냈다.


   '가고 싶은 대학에 붙었는데 등록금조차 없어서 주저앉았을 때, 새벽 일을 해서라도 그 대학 보내주겠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어?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모든 약을 다 삼킨 채 죽겠다고 울었을 때, 신발 한 짝 신고 성산대교로 달려갔던 사람이 누구였어?'


   다음 날에는 꿈을 한 번 더 꾸면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아서 하루 종일 그 애가 내게 사과하는 상상을 했다. 며칠 뒤, 그 애가 내 꿈에 나와 무릎을 꿇고 울었다. 속이 시원하면서도 슬펐다. 그럼에도 그리워서 속절없이 화가 났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 꿈을 생각하며 운다. 여전히 그리운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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