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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ul 18. 2024

한낮의 그림자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가증스러운 말인지 알아?"

     이부자리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서로 완벽히 이해하는 건 소설 속에서나 있는 일이야. 우리는 사회화된 동물이니까 이해하는 척하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한없이 사랑해서 이겨내거나 미친 듯이 미워하는 거지…."

     나는 막힘없이 술술 말했다. 틀어 놓은 드라마에서는 시몬이 마이클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브렌트가 쓴 이 책은 사람들을 물건 취급해요. 여성 혐오적이고 인종 차별적이라고요. 왜 굿 플레이스에서까지 이딴 걸 겪어야 하죠? 브렌트 같은 사람들은 얼간이로 살아도 되고 어째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늘 용서를 강요받는 거죠?'

     옅은 분노. 옅지 않은 분노. 선명한 분노.

     "그러면 차라리 이해한다고 말하지 말지. 인간은 가증스러운 동물이야. 타인을 판단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거든. 커피라도 사 주고 싶은지 아닌지 말이야. 이 짧은 생을 위해서 이렇게까지나 노력하는 내가 하찮고 우습게 느껴져."

     문득 아빠에게 커피 한잔도 사주고 싶지 않았던 그날이 떠올랐다.

     "누구나 그런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아? 너는 오히려 다행이지.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 커피 한잔 대접하고 싶은 마음을 기준으로 네 안에 들어온 사람과 내보내고 싶은 대상이 구분 된다는 게 얼마나 간결하고 편하니? 우리 삶의 점수를 저절로 매겨 주는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닌 이 세상에서 말이야."

     "너도 그런 거 있어?"

     "내 기준은 그 사람의 내일을 듣고 싶지 않은 거야."

     "너에게 내 일상이 궁금해지지 않을 날도 올까?"

     나를 빤히 쳐다봤다. 저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볼 때면 바다가 떠오르곤 했다. 내가 버리고 왔던 여름 바다. 나는 그 여름 이후로 바다를 쳐다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망망대해를 외면하는 드문 사람.

     "모순이 뭔지 아니? 너를 계기로 그게 얼마나 건방진지 알게 됐어. 내가 결심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 상대방이 그걸 고마워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였지. 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 옆에 계속 두고 싶다면 영영 짝사랑하는 거야. 상처받아도 참으면서 계속 눈을 감는 거야."

     "나를 사랑해?"

     나는 또 눈을 감는다.

     "응 고마운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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