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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Dec 25. 2021

당신의 산타를 기억하나요?

"은주야!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니? 엄마가 분명히 들었는데....."

"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저 쪽에서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어서 가 보자! 혹시 알아?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는지?"


귀가 유독 밝았던 내게도 들리지 않은 소리를 엄마는 분명 무슨 소리가 났다며 소리가 난 쪽으로 가보자고 재촉하셨다.

엄마가 소리가 들린 것 같다고 내 손을 이끌고 가신 곳은 세탁기 앞.

"여기서.... 소리가 났다고?!!!"

"응 진짜야 여기인 것 같아. 봐봐 여기 뭔가가 있어!! 은주야 네가 한번 봐봐"

엄마가 시키는 대로 세탁기 뚜껑을 열었는데 그 안에 선물 상자가 들어있었다.


세탁기 안에 선물 상자라니..... 이게 왜 여기에 들어있는 거지??

도무지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는 나보다 더 설레고 긴장된다며 어서 상자를 뜯어보라고 하셨다.


설레고, 신기한 순간.... 과연 무엇일까? 정말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신 건가?

선물이 무엇일까?

떨리는 마음으로 연 상자 안에는 꿈에 그리던 선물이 들어있었다!

반짝이는 눈, 아름다운 긴 머리카락, 가늘고 긴 팔다리의 미미 인형.


내게 미미 인형은 엄청나게 놀랍고, 신기하고, 신나는 선물이었다.

텔레비전 광고 속에서만 보던 미미 인형이 내 품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 미미 인형은 내 어린 시절 중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선물이다.


내 선물을 보고, 나보다 더 기뻐하는 엄마의 얼굴 목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은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가셨네! 우리 은주 정말 좋겠다."

그날은 내가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날이었다.


아직도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차가운 겨울 공기, 세탁기 속 선물상자 그리고 설렘 가득하던 엄마의 미소와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

나보다 더 설레어하고 기뻐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이 선명하게 생각난다.

그 모습이 내게 미미 인형보다 더 빛나고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그 이후, 내게 다시 오시지 않으셨다.

아마도 산타 할아버지는 내가 그때보다 키가 더 커서 다시 오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니면 그때보다 조금 더 의젓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내게 오지 않으셨을 것이다.


해마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대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 내가 더 떨리고 기다려진다.

그 해 크리스마스에 우리 엄마도 내 마음과 같았겠지?

선물을 품에 안고 환희에 찬 아이의 표정을 보는 일은 산타 할아버지가 엄마가 된 내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나의 산타 할아버지도 지금의 내 마음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가 내게 다시 오시지 않았지만, 나는 한 번도 슬퍼한 적이 없다.

산타 할아버지가 사라지지 않는 선물을 주고 가셨기에 한 번도 슬프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은 30년을 훌쩍 넘은 시간에도 같은 꿈을 꾸듯 잊히지 않는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그 선물은 어김없이 내게 다시 찾아온다.

내 기억이 사라지는 날까지 내게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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