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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Jan 20. 2022

아버지의 글씨

닿지 못하는 그리움에 대하여

아버지는 종종 나를 대신해 한국에서 요르단으로 보내 주실 물건들을 포장해주시고, 발송해주신다.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마다 친정 집으로 물건들을 보내 놓으면, 아버지는 휴일에 물건이 다 도착했는지 확인하시고 물건이 들어갈만한 택배 상자를 마련하셔서 포장을 해주신다. 일흔을 향해 가시는 아버지는 딸을 위해 언제나 번거롭고 고단한 일을 손수 다 해주신다.


택배를 보내기 위해 택배 용지에 보낼 곳과 보내는 이를 직접 작성하시고 발송을 해주시면, 2주라는 길고 긴 시간을 통과해 요르단에 도착한다.


택배라는 것은 언제나 반갑고 기다려지는 존재이다. 8살이 된 어린 딸이 매일 같이 "한국 택배 언제 와요? 내일은 도착하는 거죠?"를 물어보며 오는 과정을 확인해달라 조른다.


긴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다 지칠 무렵이 되면,  '오늘 택배 배송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아침부터 현관문을 바라보면서, 택배 아저씨의 머리카락이 보이기 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마치 산타할아버지가 나를 위한 깜짝 선물을 들고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듯이 설레고 신이 난다.


택배 상자에는 여러 개의 스티커와 종이가 덕지덕지 붙여져 있다. 통관하는 국가들의 언어가 적힌 종이들 틈에 한국어가 눈에 띈다. 우리 아버지의 글씨가 적혀있는 택배 용지이다.


우리 아버지의 글씨체는 모두가 감탄할 만큼 힘 있고, 품위 있으며 근사한 글씨체이다.

글씨체만으로도 어디서든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만큼 명필 가이시다.

글씨뿐 아니라, 그림 실력 또한 타고난 재능이 있으시고, 가창력은 가수 최백호 님과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이 모든 재능을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시고 홀로 생을 살아내느라 제대로 뽐낼 수도 연마할 수도 없었음이 아깝고 안쓰럽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텔레비전 속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근사한 남자 배우보다 멋졌고, 맥가이버 아저씨가 한창 우리의 영웅일 때 우리 아빠는 신가이버로 통했다. 나의 영웅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지난해 보다 더 왜소해지고, 머리숱도 더 적어졌다.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울 만큼 아버지의 얼굴에는 세월의 나이테가 새겨졌다.

아버지의 모습이 변해가는 동안 함께 하지 못한 공백의 시간이 미안하고 속상해서 목이 멘다.


아버지의 글씨는 나이가 들지 않는다. 여전히 젊고 근사한 멋진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아버지의 글씨를 동경하고 사랑하여 아버지의 글씨체를 따라 참 많이도 연습했었다.

아버지의 글씨체는 어디에 쓰여 있어도 아버지임을 알 수 있다.

손가락의 지문처럼 절대로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글씨체이다.

아버지의 성품과 닮은 곧고 힘 있고 정직한 글씨.


택배 상자에 붙여진 아버지의 글씨를 보며 돋보기를 콧등에 얹어 놓고 주소를 적는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글씨를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한다.

글자를 따라 패인 자욱을 손가락으로 따라간다.  종이 위 글씨에는 아버지의 온기가 스며있다.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주는 것만 같다. 목구멍에 그리움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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