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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Jan 28. 2022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경계에서

낯선 순간의 저항과 혼란에 대하여

나사가 헐거워지고, 알루미늄 재질로 만들어져 많이 휘기도 한 식기 건조대를 몇 년째 사용하고 있었다.

구조는 심플하지만, 요르단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국식의 효율성이 높은 건조대였다.

처음 이 식기 건조대를 발견했을 때 모래사장에서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하나 남은 물건이 상점 구석에서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부품을 확인해보니 나사 하나가 모자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사 하나는 어떻게든 고쳐볼 수 있다며 이미 불완전한 상품을 구입해서 지난 몇 년 동안 애정을 쏟으며 사용했다.


최근 요르단에 온라인 생활용품 사이트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제법 쓸모 있는 상품들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재질도 더 튼튼하고, 구조 역시 다양한 제품들이어서 눈여겨보고 있었다.

바라만 보았을 때는 이렇게도 상상하고, 저렇게도 상상하면서 '이 제품으로 바꾸면 훨씬 좋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낡고 헐거워진 지금의 것이 초라하고 수명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이제는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더 강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디자인도 좋고, 품질도 좋은 물건이 많은 한국이라면 이런 고민 없이 애초에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구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르단에서는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그 수입이라는 것 역시 좋은 품질의 상품인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나사가 하나 없는 상품이어도 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눈여겨본 상품의 입고 알람이 뜨자마자 나는 이번에도 놓치면 안 된다는 의지로 주문하였고, 새로운 식기 건조대가 도착하였다. 이번에 구입한 새 물건 역시 요르단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제품이었기에 기다리고 기다리다 구입을 하게 되었다. 나는 좋은 물건을 발견했다는 기쁨만으로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막상 조립하여 보니, 3단 높이라 생각한 것보다 높고, 폭은 더 좁고, 왠지 불편할 것 같은 생각에 괜한 욕심을 부렸나 후회하였다.

우선, 낯설었다. 낯설다는 감정에 빠지기 시작하니, 좋다고 생각했던 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있는 거 잘 고쳐가며 쓸 걸... 기존의 것은 너무 익숙해서 불편함마저 익숙한 상태였고, 새것은 낯선 모습이 어색해 상품의 기능마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새로운 것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것에 대한 주저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애정을 품었던 물건을 바로 버릴 용기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원하던 물건을 갖고도 익숙함이라는 모순에 빠져 새로운 변화에 멈춰서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선명하게 깨닫는 순간의 기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익숙한 것을 내려놓는 것을 주저하는 미련함과 새로운 것을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주저하는 머뭇거림이 초라했다.

변화가 편안해지지 않고 있는 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소심하고 연약한 마음이 부끄러웠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많은 기회와 좋은 것들을 보지 못하고 놓치며 살아왔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본질을 보자. 사람이든 물건이든 낯선 느낌에서 오는 저항에 멈춰 서지 말고, 들여다보고 경험해봐야 본질을 알 수 있다. 앞으로의 시간들 속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는 의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새로운 식기 건조대를 기존의 것의 자리에 두고, 원래 존재했던 것 마냥, 원래 사용했던 것 마냥 아무렇지 않은 듯한 시간을 보냈다.  기존의 것보다 더 튼튼하고 수납도 더 많이 되고, 공간도 더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서서히 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익숙해지지는 않았지만, 좋은 점이 더 많이 보이고, 더 좋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식기 건조대로 인해 며칠 시끄러웠던 마음이 정리가 되어간다.

변화에 경직되어가는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변화를 시도하는 것에 불편함을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물건으로 인한 작은 변화에도 이렇게 흔들리는 존재라니 참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경계에 섰을 때, 그때의 마음이 늘 불편하다.

사람 역시 익숙한 만남이 떠나가고, 새로운 만남이 다가올 때 그 경계에서 늘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익숙함이라는 것은 편안함을 주지만 멈춰있게 하고, 새로운 것은 낯설고 불편하지만 변화를 일으킨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을 잃게 된다. 익숙한 물건만 소유하다 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발전을 놓치게 되고 반면에 새로운 것만 추구하다 보면 익숙한 것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적절한 균형이 성장과 변화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

사람도 물건에도 변화에 주저하는 나는 조금 더 자주 경계에 서 있어야 할 것 같다.

경계에서의 불편함을 더 자주 느끼고, 그 불편함에 여유로워질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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