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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Jan 03. 2022

우리 집에는 해리포터 덕후가 살고 있습니다.

덕후의 삶 관찰기


아침부터  '해리포터 마법 주문 리스트'를 찾고 싶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일찍이 해리포터를 접하고 이후 일상이 해리포터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사람.

곧 8살이 되는 해리포터 덕후님.


 어제는 해리포터 캐릭터와 호그와트 문양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자신의 텀블러에 붙일 최적의 디자인을 선별하고, 인쇄 후 글라스데코로 만들어 붙이는 작업을 완성하기까지 4시간을 몰입했다.



 자신의 물건들에 해리포터를 만들어 붙이고, 만들면서 망가지면 좌절했다가 스스로를 격려하며 다시 만들고 완성되면 만족감이 충만해져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관찰 예능만큼 재미있다.

 그녀는 해리포터의 모든 주문을 외우고, 해리포터의 책과 의상 소품은 물론 수많은 굿즈와 블럭을 소장하고 있으며, 스스로 굿즈를 만드는 해리포터 덕후다.


해리포터의, 해리포터의 의한, 해리포터를 위한 삶을 살고 있다.

 그녀와 함께 팬시점에 갈 때는 항상 긴장이 된다.

 어딜 가나 해리포터의 굿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즐비해있다.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해리포터는 정말 성경책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세상 곳곳에 이리도 많은 굿즈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올 수 없다.


 사실 해리포터의 팬은 내가 먼저였다. 20년 전 해리포터 책에 빠져 며칠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폐인처럼 산 적이 있다. 나의 고등학교 졸업 선물이 해리포터 시리즈였다. 그때의 가슴 벅차게 행복했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우리 집 덕후님처럼 주문을 달달 외우고, 온통 해리포터 생각으로 가득하진 않았다. 우리 집 덕후님은 나보다 훨씬 매니아적 기질이 강한 것 같다.

 


 

 덕후의 삶을 관찰하면서 좋은 점을 참 많이 발견하게 된다.

 첫째, 슬프거나 짜증이 날 때, 좋아하는 것으로 인해 쉽게 기분이 전환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한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행복은 빈도에 비례하기에 기분 좋은 감정을 자주 느낄수록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둘째, 좋아하는 것을 갖기 위해 어렵고 까다로운 미션들도 인내하며 완주한다. 갖고 싶은 굿즈를 위해 기다리는 인내심을 배우며, 소유할 수 있다면 어떤 조건도 견뎌내며 미션을 수행한다. 열망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위해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나오나 보다. 이것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성취하는 힘으로 이끌어낸다. '행복한 사람이 고통을 견딘다'라고 말씀하셨던 김경일 인지심리학자의 말을 나는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있다.

 셋째,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가며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해리포터 레고 시리즈들을 모아 다른 블럭들과 결합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놀이를 한다거나, 스스로 그린 그림들로 새로운 놀이를 창조해낸다. 이것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강한 애정이 이끌어내는 창의력이다. "창조라는 것은 그냥 여러 가지 요소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다. 창의력은 그들이 경험했던 것은 새로운 것으로 연결할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스티브 잡스의 말 역시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이치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해리포터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수다스럽고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행복해 보인다.

 위의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 가장 중요한 점이다. 그냥 행복하다. 살아가면서 이것보다 더 좋은 이유가 있을까?

 


 

 덕후의 삶은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좋아하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보다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 같다. 더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고, 부정적인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고,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잘 다룰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뛰어난 회복 탄력성이 아닐까 싶다. 덕후질을 하는 그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고, 그 과정에 내러티브까지 생기니 이 보다 즐겁고 완성도 높은 삶이 있을까?


 덕후의 삶을 관찰하면서, 나는 세상의 덕후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을 반짝이게 만드는 멋진 일이다.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 삶에 애정 가득한 것들을 채우며, 설레는 마음으로 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도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늘려보려고 한다. 생각하면 즐겁고, 설레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설 수 있는 일을 찾아볼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여정이다. 흥미를 잃으면 또 다른 것을 찾아가며 세상 두루두루 흥미로운 것들을 경험해보아도 시간은 모자랄 것이다.

세상은 넓고, 신기한 것들로 넘쳐나니 말이다.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우리 집 덕후님은 아직도 해리포터 가족 관계도를 보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역으로 추적하고 있다. 참으로 기특한 사고의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덕후라는 것은 많은 방법의 접근과 시도를 하게 하는 놀라운 영역이다. 인간의 창의력의 원천이 아닐까 싶다. 부럽다 그 열정과 에너지...

그 마음 오래 간직하며 살 수 있길 응원한다. 아름다운 덕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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