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llalawoman Dec 28. 2021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유한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응원하며

올해의 시간이 3일 남았다. 3일 뒤면 나도 마흔이 되고, 2022년이라는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

해마다 한해의 끝이 오면 우리는 "한 해 동안 정말 애썼다, 고생했다"며 서로를 토닥여준다.

평소와 달리 살짝 긴장감도 풀리고, 무언가 잠시 여유롭고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12월 31일 늦은 밤 시작되는 연말 시상식을 보며 밤 11:59분에는 한 해를 시작하기 위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아듀! 5,4,3,2,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피 뉴 이어!"

어릴 때 늦은 밤이지만, 잠을 자지 않고 새해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보신각 종소리를 TV 중계로 보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매년 똑같이 눈 깜빡할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잘 가 안녕!"과 "이제 새로운 시작이야 웰컴 뉴 이어!"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무슨 코미디인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일 년은 여기서 시작이고 여기가 끝이야"라며 선을 긋고, 100미터를 달리기 하는 것이 인생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누가 일 년이라는 시간을 정했고, 우리는 왜 시작과 끝을 정하게 된거지??"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지구의 공전과 자전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지만, 결국 시간이라는 것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 무한궤도가 아닌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올라타는 숨 막히는 출퇴근 지하철, 같은 시간에 먹는 점심식사, 똑같은 집안일의 반복 속에서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언제까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삼시 세끼의 밥을 차리며 빨래를 하고, 또 빨래를 개는 이런 행위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해야 하게 될까?"

갑자기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하고, 죽기 전까지 밥을 하고 집안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머리가 삐죽 선다.

"맙소사, 이것이 삶이라는 건가!!"


너무 좌절하지는 말자.

우리 인간은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진 동물로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던가.


시간을 365일이라고 약속하고, 레인에 시작과 끝을 그어서 우선, 그 레이스를 달리면 된다.

지난 경기에 넘어져서 상처가 났던, 일등으로 통과했던 지난 경기와 상관없이 우리는 또 새로운 경기를 뛸 수 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이번에는 지난 경기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다.

또 넘어졌다면 손 한번 탁탁 털고 기합 한번 외치고, 다음 경기에 다시 달릴 수 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은 경기를 달려야 한다면 아마도 달리기 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달리다 다리가 풀려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지 몰라 숨이 막혀오다 기절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에게 시작과 끝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한 해의 시작과 끝이 있어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나 지혜롭고 은혜로운 개념인가. 시간이라는 약속 말이다.


무한한 시간이라는 불멸의 진리 앞에서 인간은 아주 작은 먼지와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유한하게 사는 우리는 아주 영리하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스스로 부여하면서 살아간다.

결국, 살아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시작과 끝의 연속인 것이다.


시시포스가 영겁의 시간 동안 돌을 밀어 올리는 일을 반복했지만, 그도 힘겹게 꼭대기에 닿았을 때 '드디어 끝이구나' 하고 한숨 돌리고 '그럼 다시 시작'을 외쳤을 것이다. 시시포스의 삶에서 문득 유한한 우리 시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유한한 시간은 우리에게는 어쩌면 삶의 형벌이자 축복이 아닐까?


내게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른다.

나의 시간이 눈앞의 모래시계처럼 보인다면 그것 역시 불안하고 초조하고 숨 막히는 삶이 될 것이다.

이럴 때는 모르는 게 약.


결국, 우리는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아무도 알 수 없다. 정말 다행인 것은 우리 앞에 펼쳐질 남은 시간이 형벌이 될지 축복이 될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말로 다행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생각하자.

지금 경기의 끝이 얼마나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새로운 경기가 또다시 시작된다. 유후! 떨린다. 설레지 아니한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구절이 있다.

"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매거진의 이전글 김밥을 좋아합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