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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Feb 02. 2022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

지난 9월부터 도연이는 한국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화요일 수업이 있는 날 아침이면 도연이는 오늘은 무엇을 배울지, 얼마나 재미있을지를 상상하며 들떠있다.

학원에서 만들고 배우는 작품들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소재와 경험들로 충만한 수업들이다.

요르단에서 이런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사실이 감사하고 감격스럽다.


얼마 전 선생님께서 "어머니, 제가 가지고 있는 도연이 사진이 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진뿐이어서, 혹시 마스크 벗은 사진을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셨다.

선생님께서 아이들 프로필을 만드시는가 보다 생각하고, 도연이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내드렸다.


어제는 미술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설레고 신나는 마음으로 미술학원에 들어서자마자 선생님께서 도연이를 위한 깜짝 선물을 안겨주셨다.

며칠 전 도연이의 생일을 기억해주시고, 도연이의 활짝 웃는 모습을 그려주신 그림 선물이었다. 밝고 싱그러운 봄빛이 가득한 그림이었다.

선생님께서 도연이를 위해 시간을 쓰고, 마음을 써서 담아주신 그림이라 생각하니 주인공이 아닌 내가 더 벅차고 감동받아서 울컥하고 있었다.


"제가 도연이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더라고요.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사진으로 도연이 얼굴을 처음 봤어요.

그리면서 아... 도연이가 이렇게 생겼구나 했어요."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순간, 나는 뒤통수를 어딘가에 세게 부딪힌 기분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뿔싸! 우리는 한 번도 서로의 온전한 얼굴을 본 적이 없었구나!"


세상을 뒤덮은 전염병이 우리의 얼굴을 마스크로 뒤덮게 한지 벌써 2년의 세월이 지났다.

2년 전 서로를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라면, 그 이후에 공공의 장소에서 새로 만난 인연은 서로의 눈만 바라보는 사이가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서로 함께 일을 하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웃고, 함께 인사하며 우리는 다르지 않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활짝 웃을 때 코를 찡긋하는 표정을 가진 사람인지,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는 사람인지, 수줍게 웃는 듯 참는 듯 미소 짓는 사람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것이 도덕이자 의무인 시대에 살고 있다.  

마스크를 벗고 있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저항을 품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표정을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익숙하여 사람의 표정이 궁금하지 않은 시대이다.


감정을 나누고 이해하는 것에 낯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현실은 내가 생각한 것과 완벽하게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연이 역시 선생님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으신 선생님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지만 알지 못하였다.

서로에게 따뜻한 말과 감사의 말들을 주고받지만, 표정을 주고받지 못했다.


'그림 속 표정에 맞는 인사말을 연결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온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타인의 표정을 보지 못하는 시대에 타인과의 교감 속에 이루어지는 우리의 표정을 아이들은 어떻게 학습하고 있을까?


우리의 현실이 너무 슬펐다. 매일 보도되는 신규 확진자 수와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에 무뎌지고 있을 때,

선생님의 말이 나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코로나 시대 한복판에 내던졌다.  

'아니, 우리가 정말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니!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세상이잖아!'


성인인 나는 40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코로나 2년의 시간이 잠깐 멈춰 선 과속방지턱과 같은 순간이지만,

나와 다르게 생애 모든 시간을 마스크를 쓰며 살고 있거나, 생애 절반을 마스크를 쓰며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이 표정을 보며 말을 배우고, 감정을 배우는 중요한 순간에 표정이 부재한 감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답답하고 막막하고 미안해진다.


언제쯤 우리는 서로의 눈코 입을 보면서 웃고, 울고, 이야기하는 순간을 재회할 수 있을까?

얼굴의 절반을 덮는 마스크가 어색했던 세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표정을 되돌려 줄 수 있을까?


괜스레 기운이 쳐지고, 머릿속이 시끄러워지는 날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갯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다.

애정 하는 이들의 눈부시게 환한 미소 한 번이면, 이 짙은 안개를 다 밀어낼 수 있었던 그날을 다시 돌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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