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이 사라졌다

당신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by rallalawoman

기차 안에는 발 한 걸음을 옮기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나는 내 배낭을 가슴 쪽으로 향하도록 매고 두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혹여, 배낭을 잃어버릴까 걱정스러워 넓은 검은색 끈을 배낭에 꿰매어 달고선 내 오른손에 붕대를 감듯 칭칭 둘러 감았다. 꼭 감은 끈에 손이 뻐근해지고 혈관이 팔딱 뛰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내 배낭을 낚아채어 가려고 해도 절대로 가져갈 수 없도록 나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배낭은 내가 가진 전부였다.

여권과 지갑 그리고 꼭 필요한 몇 가지 물품들이 담겨있었다. 누구도 탐내지 않을 정도로 아주 평범한 검은색 배낭이었다.

나는 비좁은 자리에 끼어 앉아 배낭을 껴안은 채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깐 졸았을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잠을 깨어보니 품에 안고 있던 가방이 사라졌다. 손에는 검은 끈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애초에 무언가 연결되어 있던 적이 없던 것 마냥 나부끼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실성한 사람처럼 기차 안을 헤집고 다녔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내 전부를 찾아서.

숨이 가빠오고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두렵고 무섭고 걱정스러웠다.


‘도대체 어디에 간 걸까? 품에 안고 있던 가방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나는 허망한 마음을 품고, 무력하게 주저앉았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니, 눈물 흘리는 것을 잊을 만큼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고개만 주억거렸다. 나를 지탱하던 모든 것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 더는 목을 가눌 힘도 없었다.


‘타박타박’ 발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주변이 온통 깜깜하다.

꿈이었다. 새벽에 잠이 깨어 나를 찾아온 나의 구원자이다.

‘꿈이었구나... 다행이다.‘


꿈속 기차 안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내 딸은 자신이 지금 나를 악몽에서 구출해 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내 옆자리를 파고든다.

딸을 토닥여주며 다시 잠 속으로 안내하는 동안, 딸의 살결과 숨소리에 나는 가방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되뇐다.


미사일이 내 머리 위를 지나가며 거대한 공기의 압력에 울리던 창문소리를 기억한다.

‘우웅 우웅’ 태어나 처음 듣는 기괴한 소리와 본능적으로 덮쳐오던 두려움에 몸을 떨던 그날이 아직 보이지 않은 문신처럼 내 몸에 새겨져 있다.

일분 일 초 안에 삶이 파괴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그날, 내 삶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휘둘릴 수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된 그날.


나와 내 딸은 서둘러 각자의 배낭에 몇 가지 물건을 담았다. 우리를 증명할 수 있는 여권과 지갑 그리고 이 집을 뛰쳐나가 생존에 필요한 몇 가지 물건만 담고 집안에 웅크려있었다.

그날 그 배낭은 지난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십수 년간 일궈온 집안 살림들과 소중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당장 오늘 이 두려운 밤을 지새우기 위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딸과 나. 우리는 아직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이 육신 외에 이 순간 필요한 것이 없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손 잡고 안전한 곳으로 치달리기로 결심했다. 11살의 어린 딸과 비루한 체력을 지닌 내가 배낭을 메고 달릴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것만 담아야 했다.

국적과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여권, 탈출에 필요한 돈, 남편과 연락할 수 있는 휴대폰, 작은 생수 한통, 추위를 버틸 패딩.

이것만으로 우리의 배낭은 꽉 찼다. 더는 무언가를 밀어 넣을 여유공간이 없었다. 딸과 나는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은 것을 딱 하나만 더 넣기로 했다.

나는 딸의 배낭에 11년 동안 단 하룻밤도 떨어져 본 적 없는 딸의 작은 애착 곰인형을 담았다. 그리고 딸은 내 배낭에 나의 일기장을 꾹꾹 눌러 담았다.

서로의 배낭에 넣은 것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것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요르단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삶이 무기력하게 흔들리는 일을 더는 견뎌내고 싶지 않았다.


내 삶에 중요한 것을 나는 또렷하게 마주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내겠다는 결심 외에 모든 것을 그곳에 두고 떠나왔다.


매일 밤 뱃고동 소리가 들리고, 바깥에 뛰어노는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와 누가 더 크나 시합하듯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가 가득한 현실에 살고 있다.

미사일과 사이렌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내 귓가에는 그날의 폭음이 맴돈다.

나만 안전한 곳에 있다는 죄책감을 애써 모른 척하며 그곳에 벗어났음을 안심한 마음을 회개하며 잠을 청한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지금 내 품 안에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언젠가 이 꿈을 더 이상 꾸지 않는 날이 오면 나는 오늘의 마음을 잊을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더 갖지 못함에 좌절하는 세속적인 인간이 되어 있을까 걱정스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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