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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Dec 23. 2021

청춘 그 아련한 존재

슈우웅..... 치익...

기차소리와 같은 커피 머신의 소리.

향기를 즐기고, 카페 구석구석의 시선을 멈추며 분위기를 취한다.


이른 아침, 분주한 바안에 젊은 바리스타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 분주한 손길에 마음이 동하였다.

22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시절에 바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바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가 잠을 자고, 버스를 타고 밥을 먹는 모든 시간들을 합쳐도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이었다.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고, 마실 줄도 모르는 내가 바리스타가 되었다.


세상의 풍파라는 거창한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나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상투적인 고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저앉았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캠퍼스는 영원히 돌아가지 못했고, 주머니가 비어있었다.

부모님 빚의 연대는 청춘의 달콤함을 훔쳐 달아났다.

작은 출판사에서 이제 곧 사라질 오래된 컴퓨터로 서체를 씌우던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바라보는 유물과 같은 모니터처럼 나도 세상의 구식이 될까 두려웠고, 뒤쳐진 출발에 좌절했다.

출판사 일은 내 청춘을 갉아먹는 일과 같았다. 이른 새벽 빡빡한 숨으로 가득 찬 지하철을 타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바라보고 또다시 피로에 찌든 영혼으로 겨우 몸을 이끌어 고단함을 달래는 삶이 지긋지긋했다. 젊은 영혼들 속에 포함되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고 싶었고,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었다.  


바리스타 면접 때, 바리스타를 지원하게 된 동기를 '저희 어머니께서 커피를 정말 좋아하세요.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잡지를 읽다 바리스타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었는데, 그때 저희 어머니께서 "우리 딸도 바리스타가 되면 참 멋지겠다"라고 말씀하셔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평온했던 유년시절의 일화는 보다 나은 수입을 갈구하는 내게 억지스러운 동기로 꾸역꾸역 끼워 맞췄다.  비겁한 마음으로 하던 일을 떠나면서, 비겁하지 않는 말들로 포장하여 아름답게 떠나는 이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바에 입성하였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유명세를 치르던 회사였다. 덕분에 이른 아침 오픈과 동시에 일본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젊은이들의 성지였기에 새벽까지 근무하는 건 일상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바 안에서 내가 커피인지 커피가 나인지 모르는 물아일체의 상태에 도달할 때, 바 밖에서는 내 또래의 젊은 이들의의 흥분과 설렘이 넘쳐났다.

나는 그들과 바를 경계선으로 두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씁쓸함을 느꼈다.

그때 바에서 흐르던 '눈의 꽃'이라는 노래는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날의 회상으로 슬프고 시리다.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막함이 나를 조여왔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 탈출해서, 시간이 쾌속열차처럼 달리는 곳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다른 세상을 살았다.

보다 높은 보수를 받겠다는 의지로 하루 수십 잔씩 맛보던 에스프레소, 반짝반짝하게 얼굴이 비치도록 닦아야 했던 매장 바닥, 군대처럼 기강이 강한 곳에서 절대복종을 하며 끓어오르는 화를 벽을 치며 견디던 시간이었다. 우아하고, 고상한 직업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나는 이제 막 훈련소에서 자대 배치받은 일병이었고, 선임들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며 깎이고, 베이고, 다시 아물며 바리스타가 되어갔다. 세상을 잘 모르고, 어렸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런저런 일도 많이 해보고  많은 사람을 겪으며 세상을 조금 알았더라면 하루 일하고 다음 날 나타나지 않던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치열했다. 상처 받은 마음이 단단히 굳은살이 배겨서 더 단단해졌고, 통증이 마르지 않았던 손목과 발목은 나무의 옹이처럼 내 몸에 깊이 박혔다. 참 많이 울었고, 많이 웃었었다.

그때의 시간들이 그 어떤 멋진 여행보다 그 어떤 인상적인 영화보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바에 가득 채우던 향기와 소리의 기억, 카페를 가득 채우던 사람들의 온기까지.


'시간이 약이다'

정말 시간이 약이다. 시간에 기대어 사는 건 무능력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말만큼 지금을 견뎌낼 수 있는 진통제 같은 말은 없다. 진통제 없는 통증을 견뎌야 한다면 너무 지독한 삶이 될 것이다.


불혹의 나이가 되어, 치열하게 일하는 청춘들을 보면 마음이 시리다.

터널 속에 있는 청춘들은 알 수 없는 미래에 숨이 막히고, 막막함에 넘어지고 또 넘어질 것이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만 바라볼 수 없고, 아름다운 것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그 씁쓸함과 좌절 속에서도 견뎌낼 의지와 미래를 향한 눈빛이 있기 때문이다.

시린 마음을 뒤로하고, 미래의 시간에 머문 청춘의 눈빛이 빛을 잃지 않길 기도한다.

모든 것에 끝은 있다. 끝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을 견뎌낼 수 있다.


쓴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쓴 맛 뒤에 남겨지는 커피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존재. 청춘 그 아련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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