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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Dec 23. 2021

마지막 이름

새벽5:30분 딸아이와 남편의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우리 어머니... 하늘 백성 되셨네요. 편안하게 최선 다해 모십시다'

외할머니의 부고를 알리는 메시지였다.

바깥은 아직 어둡고 고요한 새벽이었다. 나는 부엌에 주저앉아 울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의 치매 증상은 급속도로 악화 되었다.

새벽녘 외갓집 식구들이 집 안전장치를 모두 풀고 나간 외할머니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수소문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할머니에겐 가족들의 이름과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순간들이 자주 일어났다.


외할머니는 꽃을 좋아하셨다. 봄꽃이 만발하던 어느 날, 엄마와 나는 외할머니를 모시고 근처 공원으로 나섰다. 사진을 찍어드리기 위해 할머니를 꽃밭에 모시고 들어갔었다. 너무 좋아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던 할머니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이후, 12년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할머니의 환한 표정을 볼 수 없다. 그날의 외할머니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밝고 건강한 마지막 모습이었다. 8살이 된 내 딸은 나의 외할머니의 모습을 '아기처럼 누워 계시던 할머니'로만 기억한다. 할머니는 오랜 시간동안 모든 기억과 육체에 깊이 박혀 있던 삶의 흔적들을 천천히 잃어가셨다.


나는 외할머니의 첫 손주였다.

할머니의 치매가 악화되고, 낳고 기른 자식들의 이름마저 기억 못하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을 때에도 할머니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이름은 '은주'였다.

왜 할머니가 내 이름만 기억하시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보려 애를 써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외할머니의 장례를 마친 후, 친정 엄마와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엄마, 난 왜 할머니와의 기억이 잘 나지 않을까? 함께 산 적도 있었는데 왜 추억이 많지 않을까?" 하고 친정 엄마에게 말했다.

"네가 태어나고 외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첫 손주를 너무 아끼느라 업고 다니시다가 넘어지셔서 무릎을 크게 다치셨었어. 얼마나 오래 고생 하셨는지 몰라. 네가 너무 어릴 때라 너는 모르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부서질까 혹여 바람에 날아갈까 애지중지 하셨다고 했다. 내가 외할머니에게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었다.


그날 나는 왜 할머니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마지막 이름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할머니의 첫 사랑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할머니가 되게 한 첫 손주를 처음 품에 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셨던 것일까?. 마지막까지 '은주야'하고 내 이름을 부르셨던 것이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우리 딸을 처음 품에 안던 그날,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신비로운 존재가 태어나 나를 엄마로 새로 태어나게 한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또 다른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필연적으로 맞이한다. 아기의 탄생이 엄마라는 존재의 탄생이 듯, 첫 손주의 탄생이 할머니라는 존재가 되는 필연적 탄생의 순간.

그 순간으로 우리는 운명이 바뀌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그 순간, 나의 할머니가 되셨다.   


아이가 성장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나는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작고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중요한 사실을 기억 해낸다. 내가 태어난 순간,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나는 그 세상의 시작이고 기쁨의 원천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기억하는 마지막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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