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Jun 10. 2022

읽는 인간과 보는 인간

드라마도 영화도 텍스트 읽기


흔히들 그렇듯이 연애할 때 비슷한 성향만 알아보았던 달브과 나는 남편과 아내가 되어본 후에야 수많은 차이점을 발견했다. 그와 나는 혈액형과 띠가 같았고, 같은 빠른 년생이었고, 내장류를 먹지 못하는 식성도 닮았으며 주량도 비슷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달브와 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했다.


그는 내장뿐 아니라 게장도 잘 못 먹는 사람이었다. 휴지 거는 방향이 달랐고 텍스트를 읽는 방식이 달랐다. 그는 영화를 연달아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영화를 보다 잠드는 사람이었다(물론 집에서). 그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나는 스포일러를 차단하는 쪽이다. 그는 책을 즐기지 않았고, 나는 책을 읽지 않고는 못 사는 인간이다.



같은 이야기가 영상과 책으로 제공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책 읽기를 먼저 택할 것이다. 영상은 만든 이의 속도를 따라가야 하지만, 책은 나의 속도로 빠르게 또는 느리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영화는 흐름이 중요하므로 중간에 멈출 수 없지만 책은 얼마든지 멈추고 내 세계로 텍스트를 끌고 들어가거나 물고 늘어질 수 있다.




한때는 달브가 독서를 하지 않아서 우리가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시기도 있었다. 내게는 간절히 이해받고 싶은 영역이 있었고, 그것은 읽기와 쓰기였다. 그러나 영상도 텍스트 읽기였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읽기를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걸 깨닫고 난 뒤부터는 꼭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함께 보려 하고 있고, 달브 역시 책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책은 여러 번 읽는 걸 좋아하지만, 시간의 법칙 때문에 영상물은 두세 번 보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두 번씩 본 시리즈로는 〈왕좌의 게임〉과 〈갯마을 차차차〉가 있다. 한 번은 혼자 보았고 한 번은 달브와 함께였다. 이 두 작품은 어두움과 환함으로 대비되며, 쟁취와 포용이라는 점에서 대척점에 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티리온 라니스터와 홍반장은 나의 이상형이다.)


두 번 이상 접하고 싶다는 건 쓰고 싶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빠져나와야 작품과 나 사이의 이야기들을 꺼내 놓을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은 아직 그 세계에서 나오지 못해서 쓰지 못했다. 더 봐야 쉬움없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자니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 딜레마다. 봐야 할 책 많고, 꼭 써야 할 글들이 많은데 그걸 처음부터 언제 다시 보나.



사실 쓰고 싶다는 건 소통하고 싶다는 것이다. 달브와 내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들,  〈TENET〉이나 〈덩케르크〉, 〈인셉션〉을 보았을 때나 〈곡성〉과 〈기생충〉을 보고 나서 우리가 나눈 열띤 감상평이 있었기에 나는 리뷰를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TENET〉을 보고 나서는 노트를 몇 페이지나 할애하여 그림을 적어가며 열띤 토론을 나눴더랬다. 〈왕좌의 게임〉과 〈갯마을 차차차〉 역시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쌓여 가지만 한동안 둘 다 바빠서 극장에 못 간지 오래다. 애정해 마지않는 피터 딘클리지의 영화 〈시라노〉도 보고 싶고, 함께 주목하고 있는 박훈정 감독의 〈마녀 2〉도 보러 가야겠다. 영화도 좋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함께 나누는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독서 감상은 작가님들과 브런치에서 나누는 걸로.)




Photo : 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문장은 젖은 머리에서 나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