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시간들을 노래해봐요

우쿨렐레 적응기 #2

by 유달리


이번 레슨 곡은 〈아마도 그건〉이다. 내 목소리와 맞는 키를 고르느라 영화 〈과속스캔들 OST에 실린 박보영 버전으로 골랐다. 수업 진행 과정은 비슷하다. 먼저 기타 스트로크에 유의해서 원곡을 들어본다. 난한 코드에 인트로 기타 주법이 선명하다.


- 코드도 알고 주법도 아시겠죠? 자 그럼 시이작.


네,라고 대답은 했는데 내가 들은 그 음악을 어떻게 재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흉내도 안 된다. 그냥 내가 아는 전혀 다른 주법으로 쳐보다가 모르겠다고 선언. 하아, 게다가 추적추적 내린 비에 악기 줄도 습기를 머금었는지 탱탱거리면서 말을 안 듣는다. 선생님과 나, 나와 악기가 어긋난다.


- 선생님, 악기가 말 안 듣는 날, 있죠? (있다고 말해줘요.)



이 곡의 인트로는 여러 대의 다른 기타 소리를 합친 거라고 하시며 각각의 반주를 구분해서 들려준다. 그런 거였구나. 한 대의 기타가 내는 기교인 줄 알았는데, 여러 악기가 하나의 노래를 위해 멜로디를 조금씩 변주하면서 협업으로 완성해 풍성한 소리가 되었구나. 좋아하던 곡을 오랜만에, 그것도 통기타 라이브로 들으니 옛 감성에 흠뻑 젖어든다.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소리가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노래도 살짝살짝 따라 불러 본다. 과거를 회상하며 나직하게 시작하다가 뒤늦게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면서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한탄으로 끝맺는 곡이다. 원곡자는 최용준인데, 들어본 적은 있지만 어떤 가수인지는 잘 몰랐다. 영화에서 박보영이 부르는 노래도 홍민정이라는 이름 모를 가수의 곡이라고 한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만을 기억한다. 우리의 인연은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사랑 그것은 엇갈린 너와 나의 시간들 스산한 바람처럼 멀어져 갔네



노래하는 이는 군가의 마음을 몰라주고 기다리게 했고,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땐 그는 이미 바람처럼 스쳐간 뒤다.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확신한다면 여운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라고 짐작할 만큼의 조심스러움이 있기에 뒤늦은 회한과 후회는 아름답다. 그리하여 고뇌의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어서야 지나간 사랑이 어떤 의미였는지 깨닫는 사람, 그리움과 미련을 경험한 사람은 한층 성숙해진 채 오지 않을 그를 노래로 불러본다.




이 노래가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사랑의 기술》을 읽고 쓴 글에서 정리한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 ‘엇갈린 너와 나의 시간들’, 이것이야말로 사랑과 삶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친구든 연인이든, 심지어 함께 사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나와 타자는 다른 시간을 산다는 것. 너와 나의 시간이 내내 같지 않았어도 우리는 잠시 우리라고 불릴 수 있었음을, 어쩌면 다른 시간대를 살았기에 서로가 절실히 필요했다고 알아챌 수 있었음을 노래를 통해 되새겨본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엇갈림을 경험해왔다. 과거에 그런 일들은 상처 아니면 죄책감이었지만, 엇갈림이 없다면 우리들의 관계는 의미 없이 부풀기만 할 것이다. 이제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임을 안다. 그 어긋남은 단절이 아니라 축적이다. 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라 내 몸 안에 인연의 테와 시절의 결을 머금고 차곡차곡 침전되어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어긋난 관계들은 추억으로 남는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을 사는 존재들이 잠시나마 눈을 마주치고 교감하는 순간이란 얼마나 귀한지도 이제 안다. 그런 찰나의 가치를 결코 알지 못했던, 가사가 무얼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멜로디가 좋아서 흥얼거렸던 내 젊은 시절을 여기 이 레슨실에서 갑작스레 마주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어긋나는 나의 악기와도 추억을 쌓는 중이라고 위로해 본다.




- 선생님, 악기가 유독 말 안 듣는 날, 있죠?

- 그러네요, 오늘 악기 줄이 좀 텅텅거리네요.



홍민정, <아마도 그건>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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