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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l 08. 2022

고독과 중독 속에서 살아남는 글쓰기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홍보 카피인지 모르겠으나, 이 책에 〈INFJ와 INFP를 위한 에세이〉라는 소개가 따라다닌다.  재미로 해본 온라인 테스트에서 두 번 모두 “INFJ-선의의 옹호자”라는 결과가 나왔으므로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글을 읽을 때 글 쓴 사람을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글에 끌린다. 게다가 글을 읽고 글쓰기 욕구를 자극받는다면 내겐 더할 수 없이 좋은 글이다. 바로 이 책이 그 두 가지를 충족하는 책이었고, MBTI로는 구분 지을 수 없는 고유한 사람이 자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겹겹이 누적되어 있었다. 자신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나 깊이 있는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성향에 상관없이 이 책은 유용할 것이다.




캐럴라인 냅은 오랜 기간 동안 섭식장애와 알코올 의존증을 겪었다. 그런 그의 아버지가 정신분석가였다는 사실은 그가 말한 대로 ‘꼴불견’이라기보다는 수긍이 되기도 한다. 엄기호 작가가 말한 대로 부모란 최초의 ‘억압하는 타자’이고 그 억압이 비대할수록 영향력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의 아버지는 집안에서도 분석가였다고 했으니, 자신을 분석하려는 대상을 향해 방어 기제가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또는 스스로를 분석하다 못해 침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와 아빠의 관계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쓴 룰루 밀러와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밀러 역시 과학자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정체성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야 했다. 이처럼 부모는 자식에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나의 아이가 나로 인해 삶의 길고 긴 우회로를 홀로 걸어야 한다면... 마음이 아파 상상하기 힘들다.


고독은 우리를 보호해주는 형제, 아니면 연상의 친한 친구와 같다. 너무 잘 알기에 침묵조차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고독은 기분 좋은 메시지를 속삭이며 우리를 달랜다. (...) 그러나 고립은 고독의 사악한 쌍둥이, 아니면 못된 친척이다. 그것은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서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 고독이 얼마나 쉽게 고립으로 변하는지, 마음을 달래던 자족감이 얼마나 쉽게 소격감으로 대체되는지.


냅은 고독과 고립 사이를 방황하면서 두 개념의 차이를 깊게 파고든다. 그의 글쓰기는 날카롭고 정확하다. 자신의 상태를 냉철하게 진단하고 선명하게 표현했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한 번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의 그릇에는 어느새 고독이 스며들어와 잠깐 누렸던 행복마저 꼬르륵 잠겨버린다.



이 과정은 누구나 늘 겪는 일이지만 그걸 해소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음주나 흡연이나 사교 또는 SNS일 수도 있고, 운동이나 수집, 청소나 드라이브가 될 수도 있다. 나를 채우고 위로하는 행위가 다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인지해야 하고, 누적되었을 때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를 잃어도 쓰러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의 즐기고 돌볼거리가 필요하다.


사교나 음주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하고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혼자 할 수 있는 것이면 더 좋다. 책읽기와 글쓰기는 중독될지언정 지나쳐도 타인에게나 스스로에게 큰 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글쓰기에도 인정 욕구가 생길 수 있는데, 럴 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글을 읽거나 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인정 욕구는 희미해지고 나, 그리고 내 읽기와 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마음이 너무 지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을 때마다 ‘힘들 땐 책을 파고든다’라는, 스스로 정한 원칙을 떠올리고 실행한다. 또는 음악을 듣거나 악기를 연주한다. 내 곁에는 욕구에 충실하고 해소가 빠른 고양이들이 있으므로, 대부분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는 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아도 좋고, 허락 하에 부드러운 몸을 만지는 일도 나를 충분히 채워 준다.



냅 역시 글쓰기와 개를 돌보는 일을 통해 두 가지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다스리고 치유했던 그 모든 일들을 글로 써서 각각의 책으로 엮어냄으로써 책을 읽는 이들에게 또 다른 공감적 치유를 전했다. 내가 좋아해 마지않고 이 글을 옮긴 김명남 번역가 또한 알코올 중독 경험을 털어놓았고, 냅의 글에서 위안을 받고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고백했다.




단순한 사실적 진술 하나가 완전한 문장의 형태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는 그 말을 듣는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것은 정말 마술적이고 변혁적인 순간이다. 이것은 일종의 만화경 같은 변화랄까, 나 자신에 대한 기정사실들이 저절로 모습을 바꾸더니 새로운 질서에 따라, 놀랍고 신선한 시각에 따라 재구성되어 내 내면이 삽시간에 재편되는 듯한 순간이다.


그가 고립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 계기가 인상적이다. 그는 수식어 하나를 바꿈으로써 자신의 삶을 바꿨다. 은둔자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명랑한’을 붙이자마자 주변의 온도와 질서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은 인식의 힘이자, 텍스트의 힘이며 삶의 태도가 곧 세계를 정의한다는 것을 묵직하게 체험한 것이었다.



내가 고양이에게 느끼는 안정적인 정서를 냅은 반려견에게 느꼈다. 개를 산책시키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모임에서는 어떤 조건도 배경도 과거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개를 잘 돌보는 사람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이 그에게 어떤 평온을 가져다주는지 지켜보는 과정은 나에게도 충만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친구들이 냅에게 물었던 질문을 나도 자주 받지만, 내 세계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불편하지 않다. 다만 깊어졌을 뿐.


“개가 생긴 뒤로 네 세계가 좁아진 거야?”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내가 루실과 살게 된 뒤 예전에 하던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영화관에 덜 가고 쇼핑도 덜 하고 외식도 덜 한다고. (...) “어떤 면에서는 좁아졌지.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넓어졌어. 주고받았어.”

개는 사람에게 진정한 애착이 무엇인지를 알아볼 기회를 준다. 비교적 안전하지만 진실된 방식으로.


냅은 글을 쓰면서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제대로 바라보고 풀어낼 수 있었고, 여기에서 확장해서 세상과 자신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스스로 고독을 자처하고 고립에 몸을 담근 그였지만 사실 세상과 절실하게 연결되고 싶어 했다. 미용사와 치과 의사에게 혼날 것을 두려워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감정을 투사라고 짚어냈다. 그런 의식과 무의식의 정체를 인지할 때, 우리는 여전히 자주 헤맬지언정 좀 더 건강하게 자신을 돌보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정보 :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글, 바다출판사 펴냄

함께 읽은 책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글, 정지인 옮김, 곰출판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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