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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l 07. 2022

내 삶의 속도는 몇 킬로미터 퍼 아우어일까

클로틸드 페랭, 《빨리 빨리 빨리!》를 읽고


그림책을 보자마자 샛노란 색깔과 판형 시선을 사로잡다. 가로는 엄지에서 새끼손가락을 벌린 만큼의 두 배이고, 세로는 손바닥 끝에서 새끼손가락까지의 길이밖에 되지 않아 가로로 길쭉한 모양이다. 표지 그림은 침대를 박차고 허둥대는 아이와 물건들로 어지러운데, 그중에서도 알람이 울리고 재깍거리는 두 개의 시계가 눈에 띈다. 지면의 삼분의 이를 차지할 만큼 큰 책 제목은 《빨리 빨리 빨리!》다.


무엇이 그렇게 급한 걸까? 보던 책들도, 인형들도, 축구공과 달팽이와 고양이도 제 자리에 있는데. 아이는 서둘러 옷을 입고 양치질을 하고, 급하게 신발을 신은 뒤 엄마와 인사를 나눈다. 시계는 자꾸만 똑딱거리고 아이 친구들과 함께 버스에 뛰어 올라탄다. 아이들을 태운 버스는 아슬아슬하게 자전거와 트럭과 오토바이와 택시를 앞질러 전속력으로 달린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



그림과 글은 긴 판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아니, 길게 이어지는 그림과 글을 담기 위해 책이 길쭉해진 것이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같아서인지 의도적이 자유자재로 텍스트가 끊기고 이어진다. 그림 속 아이들은 배와 비행기로, 더욱 속도가 빠른 탈 것으로 갈아타기 위해 서두르는데, 아이는 그만 탈 것을 놓치고 만다.




혼자가 된 아이는 잠시 멍하니 멈춰 선다. 그러나 이내 걸음을 내딛는다. 걸음느려지니 그때부터 주변의 생명과 사물들과 현상들이 아이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라진 하단의 텍스트 날아가는 벌레 주변이나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등장하고 물결과 같이 일렁이면서 유연하게 춤을 춘다. 시각화 텍스트는 그림의 일부가 된다.



아이는 이제 생명과 자연을 볼 수 있다. 높은 곳과 낮은 곳, 고요한 곳과 활기찬 곳을 지나 질퍽한 땅과 눈부신 대지를 경험한다. 도시골목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땅바닥에 떨어진 물건들과 돌 틈에 핀 꽃, 바람에 날리는 신문을 관찰하기도 한다.


그렇게 긴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이는 천천히 식사를 즐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음식의 달콤함을 맛보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여유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필요 없어진 시계는 바늘 거나 고장나버린 상태다.



책 속 이야기는 “절반은 빨리빨리 읽어야 하고, 절반은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라는 소개 대로다. 앞표지와 면지, 뒷면지와 뒤표지 그림도 이에 맞춰 달라진 분위기다. 아이가 돌아본 한 바퀴의 여정은 우리 삶과 닮았다. 32페이지짜리 이 짧은 책은 우리의 의지에 따라 빠르게 살 수도, 느리게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다면 이제 우리가, 라고는 없는 시곗바늘을 계속 따라갈선택을 할 차례다.




책 정보 : 《빨리 빨리 빨리!》 클로틸드 페랭 글 그림, 나선희 옮김, 책빛 펴냄

Photo : pixabay.com & @espec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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