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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l 04. 2022

악의의 씨앗을 뿌리는 자, 누구인가

강화길, 《대불호텔의 유령》을 읽고


고딕 호러. 이 소설을 수식하는 말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고딕의 핵심이 사회적 약자의 좌절된 열망에 있음을 잘 아는’ 소설이자, ‘지금 강화길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고 어쩌면 강화길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소개한다. 강화길의 작품은 단편 〈호수-다른 사람〉밖에 읽지 못했으므로 두 번째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장르적 측면으로 접근해 보기로 한다.


다음 사전에서는 ‘고딕 호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호러와 로맨스를 결합한 문학 장르의 하나. (...) 낭만적인 로맨스에 폭력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당대에서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꾀한 것으로, 이후 영국에서 이 소설들을 영화화하여 전통을 계승하였다. <드라큘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따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글을 썼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간 《드라큘라》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이 기회에 함께 생각해보기로 한다. 사실 이 소설을 읽은 뒤 서평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는데, 다른 책과 연계해서 생각해보니 개념이 조금 잡힌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폭풍의 언덕》까지 포함해서 세 소설의 공통점부터 모아 보기로 하자.




세 소설의 모티프가 되는 가장 큰 장치는 미지의 장소다. 대불호텔은 19세기 후반 인천이 개항되면서 일본인이 지은 서양식 건물로, 외지인이 타국의 방식으로 지은 건물이기에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낼 조건을 갖췄다. 드라큘라 성은 화자 입장에서 트란실바니아라는 낯선 장소에 있는 폐쇄적인 공간이며, 히스클리프가 살고 있는 성 또한 황량한 언덕 위에 세워진 외딴 건물이어서 고립된 공간이라는 특징이 있다.



모든 것이 현재의 모습대로 놓여 있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당신이 내가 보는 방식대로 사물을 바라보고, 내가 아는 대로 알게 되면, 아마 모든 것을 다 잘 이해하게 될 거요.

-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


드라큘라의 말처럼 앞선 공간들은 지역 사회에 소속되지 못한 타자들의 영역이다. 인정과 환대를 받지 못한 자들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도록 자신이 지배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 것이다. 연주와 영현과 뢰이한이 그랬고 드라큘라 백작과 히스클리프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그들만의 생활 양식을 지닌 평범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받지 못했고, 그들의 슬픔과 분노는 공포가 되어 이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덮친다. 이것이 환대받지 못한 자들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 뢰이한이었으므로, 그가 용의자로 몰리고 말았다. 아아, 너무 쉬웠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이. 광장에 세우는 것이. 책임을 지라고 말하는 것이.



낯선 이들을 위험하게 인식하는 것은 생존 본능에 의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혐오는 다르다. 혐오는 나와 다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나쁜 것으로 확정하여 대상과 연결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이다. 경계가 혐오로 확장될 때 막연한 불안은 현실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관념인 인식 실질적이고 폭력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소설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악의’는 귀신 들린 집이나 그 집의 주인이 내뿜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이자 약자인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보낸 말과 행동, 시선과 소문이다. 이 소설은 그 하나하나의 행위들이 모여 뿌리내린 악의 결국 씨를 뿌린 자들에게 되돌아온다는 경고를 보내는 이야기다.



악의를 심는 일은 소설 속 배경이 된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도 나아짐이 없으며, 오히려 그 대상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저주와 악의를 떨쳐낼 방법은 악의가 시작된 시점으로 가보는 수밖에 없다. 그 한 걸음의 쉬운 시작은 텍스트를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타자가 되어 봄으로써 악의 대신 호의로, 고립 대신 연결로, 외면 대신 관심으로 바꿔가는 것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그 시작점이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동안, 타인의 관점을 취해 보는 과정과 소설 내용 자체가 공감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도덕 실험실'의 역할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따라 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을 사람까지 포함됩니다.

- 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




책 정보 : 《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글, 문학동네 펴냄


함께 읽은 책 :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글,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펴냄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글,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펴냄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어크로스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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