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악수를 하면서 내 손등과 손바닥을 번갈아 찬찬히 살펴보았다. “당신은 악기라곤 최근 몇 년 동안 손에 잡아본 일이 없지요? (...) 손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하고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에서
인용한 글은 좋아하는 장면 중의 하나로, 와타나베가 나오코가 머물고 있는 요양원에 방문했을 때 레이코와 만나는 순간이다. 이름이나 직업, 나이를 묻는 대신에 덥석 손을 들어 관찰하는 사람이라니. 그것이 어떤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을 때 행하는 레이코만의 방식임을 안 순간, 안도와 호감이 번졌다.
이와 유사한 경험을 얼마 전에 했다. 악기를 기타로 바꾸고 난 뒤 줄을 잡으며 힘들어하니까 선생님이 손을 좀 보자고 하신 것이다. 나의 왼손 끝을 유심히 살핀 다음에 하신 말씀은 “굳은살이 없네요?”였다.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 순간 그 말이 슬며시 꾸중하는 말로 들렸다. 악기를 꽤 다뤘는데 제대로 잡아온 게 맞느냐, 연습을 게을리 한 건 아니냐 등등의 질책인가 싶어 볼이 살짝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변명인지 핑계인지 모르게 “굳은살 생기는 거 싫어요”라고 해버렸다. 아직 발에도 없는 굳은살이 손에 생기는 게 싫다고 얄팍하게 생각하고 말해버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연주는 잘하고 싶으면서 굳은살은 싫다니, 너무 모순되고 철없는 말 아닌가. 내가 선생님이었다면 그런 학생에게 하고 싶은 의지는 있는 거냐, 노력은 안 하고 잘하고만 싶다는 거냐고 조목조목 짚어가며 따져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훈계를 하는 대신 선생님은 “왜요?”라고 되물으셨다. 굳은살이 왜 싫은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보여주신 선생님의 손끝은 굳은살이 단단히 잡혀서 악기와 오래 함께 해왔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손은 그의 삶에 음악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제야 《상실의 시대》가 떠오르면서 굳은살이 보기 싫은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고 심지어 그런 손을 가진 이의 삶이다채로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단단한 손가락으로 코드를 척척 잡아내고 아름다운 소리를 자아내는 것일 테니까.
우쿨렐레는 나일론 줄이어서 그동안은 좀 아프고 말았는데, 기타는 합금 줄이고 새 기타라서 장력도 센 탓인지 하루 30분 연습에도 손끝에 좍좍 자국이 남고 내내 얼얼하다. 어딘가에 살짝만 닿아도 아리고, 키보드를 칠 때면 찌릿한 자극이 올라온다. 기타로 매일 연습한 지 2주 만에 살갗이 벗겨지기도 하고 손끝이 조금씩 딱딱해지는 게 느껴진다. 색깔은 핑크색에서 노란빛을 띠었다가 묻어 나오는 쇳가루에 거뭇해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피부가 어느 정도 단단해져야 연주도 머뭇대지 않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레슨 때도 되도록 줄을 오래 누르고 있지 않도록 신경을 쓰시더니, 손가락이 덜 아프도록 조치를 해야겠다며 줄을 바꾸자고 하셨다. 일반 기타 줄은 구리 80%와 아연 20%로 제작된 0.12inch 사이즈인데, 추천해주신 포스포브론즈 0.11inch 줄은 구리 92%에 8%의 주석/인 합금으로 만들어져 연하고 장력도 덜하다고 한다. 우쿨렐레는 한 줄을 교체하면서도 겁이 났는데, 새 기타 줄을 전부 바꿀 생각을 하니 암담하긴 하다. 물론 이번 교체는 선생님이 해주실 것이고 곧 익숙해질 테지만.
굳은살에는 아직 적응하지 못했지만 통증은 사실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연주할 땐 조금 고통스럽지만 평상시에 손가락에 느껴지는 통증이 나쁘지만은 않다. 근력 운동을 한 다음날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통증처럼, 내가 무언가에 열심히 몰입했던 시간이 실제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으로 몸에 남은 것이니까, 음악이 내 손에 묻은 흔적이니까. 그러므로 혹시라도 레이코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이제는 떳떳하게 손을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