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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l 27. 2022

봄날의 곰에게 배운 태도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상실의 시대》가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8장 〈봄날의 아기 곰만큼 네가 좋아〉의 구체적인 애정 표현 방식이다. 아버지를 잃은 미도리가 와타나베에게 아무 이야기나 해 달라며 위로를 청하는 장면에서였다.


“아주 사랑스러워”라는 와타나베의 말에 미도리는 제 이름을 붙여서 다시 말해 달라고 요구하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조른다. 그러자 와타나베는 이렇게 대답한다.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말라붙어버릴 만큼 사랑스러워." 그러고도 더 멋진 말을 해달라는 미도리에게 그는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한다.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봄날의 곰만큼.


어리둥절해하는 미도리에게 와타나베는 ‘벨벳처럼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또랑또랑한 귀여운 아기 곰’과 네가 부둥켜안고 클로버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노는 멋진 장면만큼 좋다고 말해준다. 봄날과 클로버 언덕, 벨벳, 아기 곰과 종일 뒹굴기... 그 모든 것에 마음이 포근해진다. 보드라운 촉감이 만져질 만큼 섬세하고 동화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비유는 언제 읽어도 설렌다. 그 말을 듣고 미도리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해진다.



당시에 미도리는 와타나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몽땅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 미도리는 사랑스럽다는 말과 그 앞에 붙은 '아주'라는 강조에도 감응할 수 없었고, 잠들 때까지 와타나베가 곁에서 안아주는 것으로는 충족될 수 없었다.


하지만 '봄날의 아기곰'은 의중을 재볼 이유가 없는 말이었다. 포근함과 따스함이 얼마만큼인지 따져보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을 데워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갖 상념들이 데굴데굴 굴러가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을 것만 같다. 나는 이 장면을 와타나베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고 보았다.


와타나베는 자신 말에 미도리가 오해할까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 미도리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순간의 고백은 거짓이 아니었다. 미도리는 연인으로서 사랑받지는 못했어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흠뻑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고, 그의 성의 있는 태도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사랑을 전달하고 싶고 확인고 싶어 하는 대상에게 과거의 나는 얼마나 마음을 다했을까. 발화하기 직전까지 망설이며 '사랑해'와 '좋아해'라는 말의 무게를 재보지는 않았던가. 그저 근사하고 멋진 말만을 고르려고 애쓰지는 않았던가.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또 어땠을까. 세상의 흔한 위로의 말을 가져다가 건네고 말았던가. 대개 그랬을 것이다, 그러기가 쉬웠다.


그 어떤 수식어가 필요 없는 담백한 고백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말 앞에 수식어가 필요하다면 나는 와타나베처럼 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상실의 시대》 속 저 장면이 오랫동안 내 마음고여 있있고, 결국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배운 방식대로 얼마 전 고백의 글을 써보았다.



구체적인 말하기와 글쓰기는 상대와 나 사이의 벽을 허물고 서로가 가진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한 말을 빌리는 대신 한 번 더 상대와 나만의 고유한 지점을 찾으려 애쓰고, 내가 한 발짝 더 다가서서 상대의 손을 잡아주려는 마음. 결코 쉽지 않은 아름다운 시도. 그기에 어쩌면 '봄날의 곰'은 미도리에게, 나오코를 잊지 못해 오랫동안 방황하던 와타나베를 기다 힘이 되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책 정보 :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글, 유유정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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