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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ug 10. 2022

상실과 기억 사이에서 찾아야 할 것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이
단지 한 번의 입김이고 전율일 뿐이라는 것
값지고 황홀한 것이
잠깐의 우아함이라는 것
구름, 꽃, 비누방울,
불꽃놀이, 아이들의 웃음,
유리 거울 속 여자의 시선
그리고 많은 경이로운 것들
그것들은 발견되자마자 사라진다는 것
단지 한순간 지속될 뿐이라는 것
그저 향기이며 바람의 흩날림일 뿐이라는 것
아, 슬프게도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멈춰 있는 것은
우리에게 그다지 소중하지 않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헤세의 글을 읽었다. 그래서 우리는 잃어버린 것에 매혹되고 흔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오코도 그랬던 것일까. 떠난 기즈키가 너무도 아름답고 강렬해서 그를 따랐을까. 그로써 와타나베는 또 한 번 가슴을 앓으며 방황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잃어버린 뒤 다시 찾을 수 없는 것들에게 삶 전체를 내어줘야 하는 것일까.




소설 속 관계에서 와타나베는 주로 사이의 인물이었다. 기즈키와 나오미, 나가사와 선배와 하쓰미 그리고 나오미와 레이코가 시소의 양 끝에 존재한다면 와타나베는 그 가운데에서 중심 역할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무게를 견딜 수 없게 된 한쪽이 사라져 버리자 균형이 무너지고, 삶의 법칙을 알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젊은 날의 상실은 때로는 주변인들의 삶마저 망가뜨리고 만다.



헤세의 글에서 본 것처럼 소중한 것을 잃은 것이 아니라 사라지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인식은 삶에 중요한 지표가 된다.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함께 상실을 겪었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 곧 떠날 듯이 "나를 잊지 말아 줘"라고 말해왔고, 그럴수록 와타나베는 강해지리라 다짐한다. 나오코의 삶은 죽음을 향하고 있었고 와타나베는 그 예감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다짐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강해질 거야. 지금보다 더.


이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장 소설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와타나베가 기즈키에게 하는 혼잣말이자, 나오코가 죽은 뒤 레이코가 와타나베에게 부탁하는 말이면서 《해변의 카프카》에서 소년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강해진다는 건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힘을 갖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필연적 이별로 가득 찬 세상의 허무로부터 도미노처럼 또 다른 누군가를 쓰러뜨리지 않을 수 있는 안간힘을 키우는 일이다.


기즈키가 남긴 죽음의 그림자가 결국 나오코를 덮쳤고, 나오코마저 잃은 와타나베가 방황했던 것처럼 와타나베의 상실은 미도리에게도 상흔을 남길 수도 있었다. 와타나베의 흔들림을 지켜본 레이코는 상실의 아픔을 통해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그를 일깨웠다. 그 배움을 통해 사랑하고 행복을 느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상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애도 필요하다.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함께 보낸  애도 실패했지만, 와타나베레이코 의식은 무사히 치러졌다. 둘은 나오코가 좋아했던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포함한 마흔아홉 곡의 기타 연주와 이어진 정사로 그들만의 장례식을 통해 나오코를 보내준다. 런 뒤 레이코와타나베가 자신의 삶으로, 미도리에게 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자신도 제 삶을 찾아 떠난다.




나오코도 레이코도 미도리도 왜 모두 와타나베에게 기억해 달라고, 잊지 말아 달라고 거듭 말한 것일까? 기억해달라는 것은 계속 살아가라는 당부이자 의미를 부여해달라는 요청이다. 누군가 나를 좋은 기억으로 간직해준다는 사실은 기억하는 사람에게도 기억되는 사람에게도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기억은 경험의 치환이자 누적이며,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제 의지로 조금 더 붙들 수 있는 것이다. 그 기억을 어떻게 일구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처음부터 미도리의 요구는 나오코와는 달랐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성적 욕망의 간에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요청했다. 즉, 잃어버린 기억이 아닌 앞으로 함께 할 대상으로서 기억해달라는 요구였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와 타오르는 연기를 목격면서 죽음이 두렵지 않으며, 죽을 테면 함께 죽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에 와타나베는 저녁도 아닌 점심 대접만 받고는 곤란하다는 농담을 건넨다.


미도리는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의 욕망에 충실한 삶의 의지 자체다. 는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한 뒤 비스킷 이론으로 삶을 정의한다. 인생은 비스킷 통이고, 좋아하는 비스킷과 그렇지 않은 비스킷이 섞여 있는 것이 삶이라고. 그러므로 이제 자신에게는 좋아하는 비스킷이 남아 있을 거라고. 그런 강한 미도리가 있었기 때문에 와타나베는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 수 있었던 것이다.



난 계속 살아가기 위한 대가를 치러야만 해.


강해진다는 건 나에게 닥쳐오는 세상살이의 부침과 상실을 겪고 무너지는 대신, 아픔을 느끼면서도 계속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생각한다. 자신의 아픔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의 아픔으로 번지지 않도록  수 있는 강함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매 순간 잃고 있지만 한때 소중한 것들과 함께 했었고, 그 기억이 아직 내게 남아있다는 것에도 감사를 느낀다. 때때로 나를 뒤흔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해도, 격렬 흔들림이 잦아들면 잔잔한 내 삶이 나를 기다린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살아 있었고,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책 정보 :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글, 유유정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

인용한 글 :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헤르만 헤세 글, 김윤미 옮김, 북하우스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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