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한 여성이 어쩌다 직접 뛰어본 뒤 축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아가는 이야기. 가만, 이거 내 얘기 아닌가? 종목은 다르지만 분명 내 얘기다. 기타를 배우게 된 과정도 꼭 이와 같았다. 오랜 선입견으로 인한 회피의 시절을 보내다가 갑자기 엮여서 당황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생각지도 못했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패턴.
수영을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어릴 때 동생이랑 튜브 하나에 작은 몸을 구겨 넣고 놀다가 얕은 물에 빠졌다. 서로 일어나려다가 잔뜩 물만 먹은 기억 때문에 물이 무서워 배워 보라는 온갖 권유를 피해왔는데, 수영을 다니던 남편 달브가 라섹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회원권 양도는 가족에게 밖에 되지 않아서 최소 두 달은 내가 대신 배워야 했다.
수영용품을 모두 준비해놓고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은 커져만 갔다. 입단하기로 해 놓고 축구화와 축구 양말을 사놓고 태그도 못 떼었다는 작가의 심정, 그 ‘이러지도저러지도못하는스탠스’를 너무 알 것 같았다. 그가 단체 생활을 두려워했듯 수영복을 입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것에 더해 물이 채워진 필드 자체에 겁이 났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포기해버릴 성격도 못 되는 나였다.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이불을 끌어안고 엉기적엉기적 꾸물대다가 딱 두 달만 배우자고 결심하고 수영장에 갔다. 그 한 번이 힘들었을 뿐, 침대에서 빠져나오기가 밤새는 것보다 고역이던 한겨울에도 열심히 나갔더니 3년이 지나 있었다. 어느새 나는 길을 걷다가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물에 뛰어드는 상상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수영에 그리 재능이 없다는 건 금방 알았다. 마음만큼 어깨가 잘 돌아가지 않았고 자유형도 배영도, 평영도, 접영은 말할 것도 없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수영 때문에 느끼는 좌절보다 물속에서 노는 자유가 더 컸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지만 그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고만고만했던 생활 패턴을 비집고 가지를 뻗어나가는 새로움에 흥미라는 싹이 돋는다. 내 하루에 스며들어와 윤기를 만들어 준 음악처럼.
물속에 있으면 언제나 해방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과, 숨을 무사히 쉬며 뭍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축복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자유형을 하다가 힘들어서 느릿느릿 배영을 하던 때였다.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갑자기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모든 것이 느려졌다. 작은 물방울이 거대해지면서 영롱한 비눗방울처럼 내 주변을 사뿐히 날아올랐다가 내려앉았다. 그 순간은 모든 것이 슬로 모션이었고, 나는 우아하고 편안하게 물 위에 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웅장한 자유를 경험했고, 그래서 나는 작가가 말하는 우아한 축구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학교에서 여학생들이 배우는 거라고는 피구나 발야구가 전부였으므로 제대로 된 축구는 맛볼 기회조차 없었다고 했다. 나의 어린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7살에 입학하고 키도 몸집도 작았던 나를 너무 배려했던 선생님들 덕에 나는 철봉도 뜀틀도 달리기도 무서워하는 청소년으로 자랐던 거다.
유일하게 잘한 것은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였다. 친구들이 0초, 1초를 기록하고 우수수 떨어지는 동안 꼼짝하지 않았고, 30초가 넘어가서 이제 그만 됐다고, 내려오라고 할 때까지 매달려 있던 아이.그 성향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 같다. 시작하기까지는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한 번 발을 들이면 꼭 붙들고 매달리는 모양이. 수영과 우쿨렐레가, 기타와 글쓰기가 내게는 그랬다.
감독님께 야단맞을까 봐 드리블 연습도 두렵고 갑작스러운 출전에 혼이 빠질 것 같은 긴장도 내가 다 안다. 그렇지만 수영도 시작해 보니 별 거 아니었고, 1년이나 망설인 기타도 좌절은 할지언정 매력은 충분했으니, 축구라고 못할 게 뭐 있을까! 그의 말장난에 홀리고 축구의 매력에 넘어갈뻔했다. 그렇다고 축구를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제 뭐든 망설이는 데 시간을 많이 소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려움 너머에 넓고 깊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용기 충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