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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ug 07. 2022

우리집 사건사고뭉치 새싹보리

ep.15 어릴 때부터 널 알아봤어야 했다


아깽이가 캣초딩으로 성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캣초딩은 사람으로 치면 첫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이렌 소리에 맞먹는 구조 요청에 달려갔더니 보리가 책상 뒤 허공에 거꾸로 끼어 있었다. 그런 아기들이 셋이니, 상상에 맡기겠다. 다행히 아빠를 닮은 회색 고양이들은 비교적 얌전한 편인데, 아이보리색 털을 가진 빛나는 보리는 우아한 생김새와 달리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남다르고 유독 재빠른 아이였다.


그 시작은 화장실이었다. 아기들이 가기 편하라고 낮은 화장실을 두 개나 마련해 두었는데도 보리는 엄마 화장실을 탐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2층 화장실이라 다이빙했다가 클라이밍을 해야 하는 수준인데도 용케 굴러 떨어졌다가 잘 기어올라왔다. 그리고는 힘든지 화장실 입구에 앉아 한참 쉬었다가 나오곤 했다. 작은 솜방망이를 늘어뜨리고 입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아기 고양이의 하찮음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아기들이 무슨 사고를 벌일지 알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집을 비울 수 없었고 생후 두 달이 지난 뒤에야 긴 외출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그 하룻밤이 얼마나 길던지, 아기들이 어디에 끼여 있거나 다친 건 아닌지 온갖 걱정을 하며 서둘러 돌아와 아이들을 찾았다. 하나, 둘, 셋, 다 있는데 보리가 안보였다. 온 식구가 구석구석 샅샅이 찾아도 보이지 않아 겁이 덜컥 났다. 망연자실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그 조그만 아이가 에어컨 위에 위엄 있는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어이없음이란.


그래, 보리가 짱 먹어라.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터졌다. 보리는 실과 바늘을 무척 좋아한다. 재봉 도구가 든 상자만 꺼내도 흥분해서 그르렁거리는 아이다. 한참 재봉을 배울 시기라 자주 재봉틀을 돌리다 보니 부주의해진 사이, 보리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실을 꿀꺽 삼켜 버린 거다. 게다가 실 끝에 바늘이 달려 있었고, 보리 입안에서 반짝하는 물체를 보고 깜짝 놀라서 꺼내려는데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길고 뾰족한 걸 삼키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잘못 본 것이려니 생각하고 싶었다.


그 뒤로 보리는 태연하게 밥도 물도 잘 먹었고 나는 밤새 공포에 덜덜 떨며 보리를 지켜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리는 잠도 잘 잤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에 데려가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바늘이 장까지 내려가 있었고, 중성화 수술 실밥을 푼 지 얼마 되지 않은 보리는 다시 개복 수술을 해야 했다. 그날 나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고 저주했는지 모른다. 그나마 실이 있어서 수술 과정에서 바늘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고, 별다른 상처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보리는 늘 내 곁에서 맴돌고 따르면서도 잘 안기려 하지 않고, 빠져나가는 속도도 너무 빨라서 자칫하면 사라지기 일쑤다. 중문이 있어도 순간순간 빠져나가 현관 밖을 나가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여닫이 중문일 때는 그나마 통제가 되었지만 미닫이 중문인 지금 집에서는 스스로 너무 손쉽게 문을 열고 닫는다. 어느샌가 현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문이 열릴 때만을 기다렸다가 쌩 하고 나가버리는 것이다. 언젠가는 아주 조금 열린 창문을 비집고 나가 창 유리와 창 밖 가림막 사이 허공에 끼어 버티고 있던 걸 발견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 우리 집은 3층이었다.




하루는 퇴근하고 왔는데 보리가 없었다. 집에 딸기가 있었지만 보리가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딸기가 바로 뛰어나가 살펴보았는데 아무 데도 없다며 울면서 들어고 집안 구석구석 옷장, 부엌장, 신발장, 세탁기 속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보리는 없었다... 결국 다시 나가서 찾아보기로 했다. 고양이들은 위로 올라가는 습성이 있으므로 위층으로 올라가 보았더니 옥상 문 앞에서 은폐엄폐하고 있는 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을 그러고 있었던 건지! 그 순간 나는 단축 뻔했던 수명을 또 한 번 연장했다.



세상에는 고맙게도 고양이 탐정이라는 직업이 있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주는 전문 탐정이다. 보리 때문에라도 그 이야기가 솔깃하게 들렸다. 연락할 일은 절대 없어야겠지만 호기심 대마왕 보리가 언제 또 버라이어티 한 이벤트를 벌일지 알 수 없으므로 그런 것도 알아두어야 하는 신세다. 어여쁜 보리야, 이제는 더 놀라게 해주지 않아도 돼. 엄마가 영역 순찰도 더 열심히 따라다니고 더 잘 할게. 그러니 깜짝 이벤트는 이제 그만 해주겠니?




Photo : @espec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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