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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ug 23. 2022

반려묘 가정의 묘한 시간과 공간

ep.17 더 나은 묘생을 위해서


고양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을 섬겨야 한다는 정설을 깨뜨리러
세상에 왔다.


이 격언은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에서 인용한, 록밴드 '슬립낫'의 베이시스트였던 폴 그레이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 고양이는 인본주의를 반성하게 하고 인간이 동물을 섬기게 만드는 독특한 존재다. 오죽하면 인간들 스스로 기꺼이 집사라고 칭할까.


고양이들은 영역 다툼만 아니면 대체로 어떤 환경에서든 편안하게 삶을 영위하지만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집사로서의 노력을 계속한다. 고양이는 환경이 바뀌거나 구성원이 바뀌는 것에 매우 예민하다. 그래서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쇼핑몰이나 호텔 같은 장소가 많이 생겨난들 고양이에게는 해당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양이 복지 정책을 펼칠 것인가?



무엇보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수직 공간이다. 캣타워뿐 아니라 책장 위와 냉장고, 주방 수납장 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다음으로는 볼거리다. 외출하지 않는 고양이들의 창 밖 구경은 사람이 TV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러 방향의 창틀에 올라가기 쉽게 공간 배치를 했다. 마지막으로 혼자 들어가 즐길 수 있는 상자와 바구니를 곳곳에 두고 책장도 몇 칸 비워 둔다.


반려묘 가정의 흔한 집들이 풍경


고양이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이사였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 것에 더해 집들이로 낯선 사람들의 관심과 손길까지 더해지니 호두가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방광염으로 입원한 열흘 동안 호두와 떨어져야 하는 것은 사람에게도 고양이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면회를 다니퇴원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집에만 가면 살 것 같았는데, 쿠키가 냄새가 달라진 호두를 경계하면서 며칠간 큰 다툼이 일었다. 그래서 사나흘 간 호두 곁에 붙어서 생활하고 잠을 잤다. 정상적으로 쉬하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폭포 소리를 되찾았다며 우리끼리 얼싸안았다. 이런 사소한 일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꼈다.




고양이액체설유명한데,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액체라기보다는 프라이팬 위에서 잘 구워진 인절미나 갓 완성된 찰떡같은 느낌이다. 그러므로 제 몸집보다 작은 상자와 바구니에도 고양이는 어떻게든 을 끼워넣고 쌀포대나 쇼핑백, 온갖 크기의 상자들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 일단 상자가 생기면 적어도 일주일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 고양이 전용으로 놔둔다.



고양이는 하루에 한두 번 격하게 노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냥 본능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장난감을 흔들면 고양이의 동그란 눈은 커다란 보석이나 아몬드처럼 육각형스럽게 바뀌면서 빛이 난다. 그러면서 엉덩이를 씰룩씰룩거리며 무섭게 집중한다. 그 눈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 손은 장난감을 흔드느라 바쁘다.


비싼 장난감은 인기가 없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기본적으로 수제 장난감을 선호하고, 각자 다른 스타일을 추구한다. 쿠키는 싱싱한 방울토마토 꼭지라면 난리가 나고, 호두는 열쇠고리였던 여우 인형 꼬리를, 보리는 헤어롤과 털공, 율무는 훈제 달걀 포장지인 빨강 그물망과 노끈몹시 좋아한다. 쉽게 망가지는 장난감이어야 사냥에 성공했다고 느끼 만족도 높아지는 것 같다.



어쩌다 겹치게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어도 누구 하나가 몰입해서 놀면 다른 한 마리는 얌전히 기다리며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짧은 사냥놀이 시간에도 그 참을성과 배려, 예의바름을 통해 깨닫고 배우는 것이 있다. 인간만이 상자 속에 수납되어 잘 쉬고 있는 고양이를 안아 올려 늘 귀찮게 군다. 이것만은 참기 힘든 인간들을 고양이가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Photo : @espec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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