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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ug 30. 2022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ep.18 고양이의 숨결과 체취에 고취된 밤


늦은 밤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이내 사뿐한 진동이 전해진다. 누굴까, 누가 왔을까. 움직임만으로 짐작해본다. 미세한 움직임과 스치는 부드러움, 막내 율무다. 발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발목에 기대어 몸을 웅크리고 앉은 고양이의 가느다란 들숨과 날숨이 느껴진다. 작은 털뭉치는 꾸벅꾸벅 졸다가도 이따금씩 혀로 제 털을 고른다. 쭙쭙대고 쌕쌕거리는 부드러움에 난 불편한 자세가 되어도 좋다.


그 움직임이 귀여워서 몸을 일으켜 하염없이 바라다. 우리는 10분이 넘도록 서로의 생김생김을 살펴보았다. 율무는 깜빡이는 내 눈을 신기해하며 속눈썹과 콧등의 냄새를 맡았고, 나는 깜빡이지도 않고 나를 주시하는 율무의 눈동자를 오래도록 관찰다. 작은 생명이 가진 유리알 같은 투명함이, 우주가 담긴 듯한 깊이가, 흔들리지 않는 내면이 아름다웠다. 고양이와의 교감은 나를 늘 행복감에 젖게도, 부끄럽게도 만든다.



동물의 본능이란 참 신비롭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배운 그루밍을 하루도 빠짐없이 충실히 수행하는 걸 보면. 어디 외출할 것도 아니면서, 곧 잠에 들 터인데 앞발과 뒷발, 등과 배, 발바닥뿐 아니라 발등에 침을 묻혀 얼굴까지 닦는다. 그러다가도 내 손이 가까이 오기라도 하면 제 할 일을 제쳐두고 나부터 정성스레 핥아준다. 털이 없다고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편견 없이 대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땀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늘 관리해서인지 고양이는 목욕을 하지 않아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양이에게는 좋은 기억의 냄새가 난다. 햇볕에 널어둔 포근한 담요 냄새, 어릴 때 좋아했던 인형의 냄새, 좋은 사람의 품에 안겼을 때 나는 그리움의 냄새 같은. 몸이든 마음이 힘들 때면 고양이 뒤통수 냄새를 흠뻑 마신다. 그러 폐 깊숙한 곳까지 잔잔한 평온이 스며들어온다.



타고난 털옷 하나로 숨 막히는 여름 더위도 차디찬 겨울 추위도 웅크린 채 묵묵하게 견디는 아이들. 고양이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사람은 왜 그리 연약한 몸을 갖고 태어나서 이리도 두르고 걸칠 것이 많은가. 나 스스로 해결되는 것이 무엇하나 있나 싶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남의 손, 다른 도구를 빌려 다듬고 칠하고 가려야 하질 않나. 그러기 위해 어떤 것은 파괴하고 어떤 것은 그 흔적이 산을 이룬다.




그냥 누워 있었다면 내가 잠들 때까지 발치에 있어주었을 텐데, 관찰하는 시선과 자꾸 만져대는 손길이 부담되었는지 고양이는 이내 자리를 뜬다. 소리도 내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고양이, 움직이면서도 소음 하나 없는 고양이는 우아하다. 제 몸을 스스로 정성껏 가꾸는 고양이는 우아하다. 그러면서도 무엇 하나 더럽히지 않는 고양이는  우아하다.




Photo : @espec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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