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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Sep 07. 2022

요란법석한 동물의 왕국

ep.19 호랑이가 여우를 발견했을 때


고양이 삼남매가 태어나 성장하고 나니, 사람들이 다 나가고 혼자 자주 외로웠을 쿠키에게 친구가 생겨 안심이 된다. 사람과 아무리 교감을 한들 닿을 수 없는 영역을 서로 채워주는 모습을 보면 다행이다 싶다. 그루밍을 해주거나 본격적인 우다다 놀이를 할 때, 간혹 으르렁거리는 모습까지도 흐뭇하고, 그릉그릉 쌕쌕거리는 짐승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 없다.




고양이들 각자 타고난 개성과 성격에 따라 여러 동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호두는 태생적으로 골격이 크고 늠름해서 호랑이를 닮았지만 알고 보면 애교가 넘치고 순둥순둥해서 사람 옆에 딱 붙어 있으려는 애교쟁이 아기곰이다. 제 힘이 센 줄 모르는 아이라 곰발 같은 커다란 발로 간식을 채가려는 모습이 귀여워서 입에 넣어주려다 보면 굵직한 송곳니 손가락에 구멍 낼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맹수 호두 vs 곰돌 호두


보리는 외모도 성격도 은여우를 닮았다. 날씬하고 우아한 자태와 하얗게 빛나는 털, 재빠른 동작과 영민한 머리까지. 보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없고, 열지 못하는 문은 묵직한 현관문밖에 없다. 어딘가에 숨어있기를 좋아해서 퇴근 후에 늘 숨바꼭질을 하게 하는 아이인데, 나를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나를 데려가서 둘만의 시간을 즐기기 좋아해서 우리는 커튼 뒤에서 자주 칩거를 한다.


아이보리 털을 가진 여우보리


율무는 막내이자 두 수컷 사이에서 암컷으로 태어나서 젖을 잘 못 먹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성묘가 되어서도 엄마젖을 찾다가 냥펀치에 당하곤 한다. 여전히 아기 고양이 같은 자그마한 격의 율무는 르르르 도망가는 다람쥐였다가 짝폴짝 토끼가 되었다가 한다. 원하는 게 있어도 울거나 보채지 않고 커다란 눈망울로 한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하기 그지없는 꼬맹이.


똘망똘망 아기아기한 율무


쿠키는 기분에 따라 성격도 왔다 갔다, 표정도 가지가지다. 어떨 땐 게으르고 못된 물개 같다가 놀서 눈을 동그랗게  뜨면 부엉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때 알아서 긁어주지 않았냐고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어슬렁거리며 나에게로 직진할 때, 그 당당함이 못 견디게 좋다.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으니 공간을 만들라고 내 팔을 툭툭 치는 그 자신감, 가슴 위에 올려놓으면 찰떡처럼 들러붙어 골골대는 쿠키의 펑퍼짐한 무게감 좋다.


물개와 부엉이 사이의 쿠키


가끔씩 순찰을 돌자고 찾아오는 호두와 보리. 이번에는 내가 고양이가 될 차례다. 아이들의 시선으로는 공간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서 네 발로 기어 보기도 한다. 그렇게 커다랗고 아무것도 모르는 고양이가 되어 따라나서면 자기만 믿으라는 듯 앞장서는 녀석들. 모서리와 귀퉁이마다 제 볼을 문지른 다음, 곧바로 내가 쓰다듬어 주길 원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체취를 교환하고 우리만의 장소에 표식을 남긴다.




하루 대부분을 여유롭게 보내는 고양이들의 동물적인 감각이 살아나는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어슬렁거리면서 시작되는데, 점점 움직임이 재빨라지면서 누군지도 모르게 쌩하고 지나가 버리거나 소리도 없이 휙휙 날아다니기도 한다. 순식간에 거실 한복판은 거친 야생의 세계가 된다. 


네 마리의 고양이들이 잡고 잡히는 모습을 보면 만화가 따로 없다. 랑이가 된 우를 사냥하듯 보리를 쫓아갔다가 나오면서는 호두가 쫓기고, 어디선가 쿠키가 튀어나와 율무덮치고... 만화 〈톰과 제리〉의 추격전 같다. 렇게 가끔 요란스러워지는 신나고, 인간 동물 할 것 없이 다양성이 넘치는 우리 집 구성원들 개성이 좋다.


율무와 호두의 겨루기 한판 그리고 까꿍 보리




Photo & video @especially

Cover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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