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Oct 20. 2022

고양이의 몸짓, 탐하고 탐색하기

ep.20 그렇게 쓸 거면 날 주지


고양이는 양립할 수 없는 반전 매력을 갖고 있다. 귀여움과 우아함, 그리고 그에 반하는 요상함이 그것이다. 평소에는 매우 귀엽다가 가끔 허를 찌르는 자세를 하고 있으면 그 엉뚱한 매력에 홀딱 반해버리고 만다. 적절한 균형을 간파하고 있는 고양이가 인간들을 조련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귀여움이야 보송보송한 털뭉치 발 사진 하나로도 설명이 끝난다.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 조그만 삼각형 이어진 숫자 3 모양의 깜찍한 입선까지, 고양이는 사랑받을 만한 모든 걸 갖췄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 이론이 있듯이 귀여운 것이 폭력적인 세상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으며, 언젠가 인류를 구원할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쿠키의 투실투실 완벽한 바디라인


우아함도 고양이를 상징하는 익숙한 이미지다. 청결을 인간에게 맡기지 않는 습성이며, 조급하게 애정을 표하지 않는 은근과 적당히 거리를 둘 줄 아는 매너를 갖고 있다. 은 또 어떠한가, 동그란 머리에서 시작해서 척추를 부드럽게 지나 산들산들 움직이는 꼬리까지 이어지는 곡선이란. 하지만 무엇보다 감탄을 자아내는 건 도약하는 순간의 우아함이다.


고양이들은 공간 감각이 뛰어나서인지 도약에 실패하는 법이 많지 않다. (물론 뚱냥이나 유머 감각을 타고난 냥이들은 즐겨 실패하며 우리를 웃겨 주기도 하지만!) 디딜 곳이 있는지 세심하게 탐지한 뒤, 제 키의 몇 배나 되는 높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뛰어오른다. 한껏 몸을 움츠렸다가 길게 뻗어올라 가볍게 착지하는 모습은 우월하다. 발 밑에 있던 아이가 어느새 소리도 없이 사뿐히 내 가슴 높이에 올라와 있는 걸 볼 때마다 놀랍다.


보리가 넋을 놓은 순간


한편 고양이는 건망증이 심하다. 주로 그루밍을 하다가 혀를 수납하는 걸 잊는다거나 앉아서 발을 들고 있던 걸 깜빡해서 한없이 들고 있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힘들거나 불편하지도 않은지 뒷발로 안부 인사를 자주 전하는데, 그런 순간은 자주 봐도 무덤덤해지지가 않는다. 귀여움에 몸서리치면서도 고양이가 알아챌까 봐 숨죽인다.


또 다른 시그니처 자세는 바닥에 등을 대고 배를 드러낸 채 네 발에 힘을 뺀 만사태평 자세다. 이 자세를 하고 있을 때면 고양이는 특유의 예민한 감각 스위치를 아예 내려놓 것 같다. 배에 얼굴을 묻고 들숨날숨을 몰아쉬거나 하염없이 부벼도 태연하게 자세를 유지하는 걸 보면. 이때는 평소에 만지면 싫어하던 발을 조물락거리는 것까지 허용된다. 고양이들이 이 집에서 편안하게 지낸다는 반증인 것 같아서 이 자세가 반갑다.


율무는 유유자적, 묘생무상


가족 중 누군가의 다급한 부름이 있을 때면 고양이가 늘 그렇듯 귀엽거나 이해할 수 없게 이상하거나 둘 중 한 가지 상황인 거다. 호출 신호가 오진기한 장면을 놓칠 세라 부리나케 뛰어간다. 이상함은 고양이 세계에서는 주로 ‘고장 났다’ 라거나 ‘쟤 또 저러고 있다’라는 말로 통용된다.


몸에 맞지 않는 상자에 몸을 있는 대로 구겨 넣은 모습은 헛웃음을 유발하고, 네 발을 몸속에 접어 넣고 유유자적하게 식빵을 굽는 모습은 심장을 애무한다. 그 우아한 움직임과 몸짓, 걷는 모습, 뒹구는 모습, 앉아있는 자세 하나하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귀하다.


보리율무표 고양이맛 컵라면


가끔 고양이가 '나 왔다'는 식으로 '우애오옹~' 하고 기척을 하는 것은 만져달라는 뜻이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슥 훑고서 뒷통수부터 등 여기저기를 꼬무락꼬무락 긁어주면 냥이의 발가락이 쫘악 펼쳐졌다가 오므라드는데, 그 너무 좋다. 고양이가 만족하는 그 순간, 그 몸짓이.




Photo by @especially

이전 19화 요란법석한 동물의 왕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