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저녁, 서둘러 퇴근하여 기타를 둘러멘 뒤 레슨실로 향한다. 수업을 앞둔 감정은 대개 기대 반 긴장 반이다. 어떤 곡이 내 몸을 통과해서 악기 줄을 넘어 울려 퍼질지 기대가 되면서도,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아 어떤 좌절을 겪어내야 할지 알 수 없으므로. 흐름이 중요한 야구 경기처럼 어느 쪽이 우세한지에 따라 그날의 연주 분위기가 달라진다.
선생님이 내려놓은 악보는 딸과 함께 자주 듣던 숀의 〈Way Back Home〉이었다. 어쿠스틱한 멜로디가 좋아서 언젠가 배워보자 했던 곡이라 반가운 마음이 컸다. 이 곡 역시 그냥 즐길 때는 몰랐는데 연주를 위해 들어보니 박자가 빨라서 난항이 예상된다. 김목인의 〈스반홀름〉을 배울 때도 느꼈지만 좋은 곡은 전체적인 느낌에만 빠져서 요소를 생각하지 못한다.
악보를 보니 코드 반주가 진행되다가 간주 때 솔로 연주가 더해지는데, 이 말은 혼자 연주할 수 없는 곡이라는 뜻이다. 합주를 하거나 녹음 반주를 틀어놓고 연주하거나. 잘만 하면 멋짐이 폭발할 것 같다. 원곡 키에 맞추자니 음계를 올려주는 카포가 필요했다. 기타로는 처음 사용해보는 카포를 넥의 세 번째 프렛 위치에 장착시켰더니 왼손도 바디 가까이에서 놀게 되고, 평소 연주했던 자세와 달라진다.
멈춘 시간 속 잠든 너를 찾아가 아무리 막아도 결국 너의 곁인 걸
반주로는 이 네 마디의 패턴과 그다음 이어지는 패턴 두 개가 반복되는 곡이다. 간주 솔로 부분은 다음 시간에 배우기로 했다. 첫 번째 패턴은 쉬운 편이어서 많이 헤매지 않았다. 나의 반주에 노래를 불러주던 선생님이 간주 부분에서는 솔로 멜로디를 얹어 합주를 하니 제법 그럴듯한 노래가 만들어졌다. 이래서 합주를 하는구나 싶게 꽉 찬 느낌과 뿌듯함이 올라왔다.
문제는 두 번째 패턴이었다. 리듬이 쪼개지면서 오른손으로 연달아8-16-16분 음표를 튕기고 바디를 치고 다시 튕겨야 하는데, 바디를 때린 뒤 오른손이 줄 위치를 찾지 못하고 헤맨다. 이때 코드를 잡는 왼손은 엄지 위치가 자꾸 어긋나면서 맑은 소리가 나지 않고, 줄을 누른 손가락 위치를 미끄러뜨려 음계를 바꾸는 슬라이딩 기법이 난무하니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바디 치는 위치 잘 잡으세요. 왼손 약지는 고정이에요. 떼지 말아야죠. 리듬 신경 쓰고! 왼손 엄지 어디 가있죠? 이 코드는 그 자리 아니죠? 왼손 중지 한 줄 올리고!
몰아치는 지적에 혼쭐났다. 보통 손에 익지 않아서 헤매는 부분은 숙제로 내주고 넘어가는데 이 곡은 그럴 수가 없었다. 곡 전체가 두 패턴의 반복이어서 이 패턴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교정과 지적이 이어졌고,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기로 했는데 같은 부분에서 계속 틀리고 만다. 선생님은 멈춤 지시를 하지 않으셨고 침묵 속 엉망 연주는 계속됐다. 하고 싶던 곡이었다고 말이나 말걸.
그러자니 문득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나는 넓은 그라운드 위 외딴섬과 같은 마운드에 홀로 선 신입 투수가 된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7회 초 19: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패전조 투수에게 벌투를 던지게 하는 야구감독이었다. 교체 지시를 내릴 법도 하건만, 지켜보기만 하는 잔인한 사람... 평소와는 다르게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선생님의 매운 눈초리가 없는 내 방에서 차근차근 연습하고 싶었다.
잠깐의 설렘 뒤에 긴장의 연속이던 레슨을 겨우 마친 뒤, 늘 같이 걷던 딸도 레슨 시간이 달라져서 집으로 혼자 돌아가는 길. 마음도 무겁고 기타도 묵직했다. 오늘 다시 느꼈다. 처음 보는 코드나 주법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게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므로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것. 힘들다... 집에 가서 좀 쉬고 나서 내일부터 다시 해보자. 이번 한 주도 고행 예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