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있는 고양이 만화가 많지만 나에게 으뜸은 《고양이와 할아버지》다. 섬마을에서 혼자된 할아버지와 투닥거리며 살아가는 10살 고양이 ‘타마’의 일상을 귀여운 그림체로 그려낸 만화. 하루 일과를 마친 뒤 등을 기대고서, 또는 일정 없는 주말에 소파에서 뒹굴며 책을 펼치면 몸은 나른나른, 기분은 몽글몽글해지고 만다.
작가 네코마키는 반려고양이를 둔 부부 일러스트레이터로, 고양이를 소재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집 앞 도서관에 다른 책도 있지만, 아껴둔 간식처럼 남겨둔 채 이 책만 반복해서 읽는 중이다. 반려인답게 고양이의 습성을 정확히 표현한 것에 감탄하고, 반려인이 아니더라도〈리틀 포레스트〉나 〈갯마을 차차차〉를 떠올리게 하는 시골 마을의 푸근함에 반하기에도 충분하다.
각 만화에는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별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인물들은 간단한 선으로 표현되어 있음에도 개성이 넘치고 섬마을 풍경은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다. 8권까지 출시된 상태인데, 도입부만 컬러인 다른 책들과 달리 6권은 올 컬러판이어서 특별히 좋다.
오밀조밀 지붕 너머 빨간 등대가 보이는 평화로운 바닷가. 생선 상자를 나르는 어민들과 그 주변을 기웃대는 고양이들이 먼저 독자를 맞이한다. 우체부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돌담 사이로 난 계단과 풍성하게 핀 벚꽃, 오래되어 정감 어린 목재 가옥들과 개성 있는 이웃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배경에 숨어있는 고양이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데, 고양이 마을이라는 이름답게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중이다.
고양이 타마는 귀여움과 까칠함을 동시에 갖고 있다. 고양이가 열 살이면 사람 나이로 50대 후반 정도로 묘르신이라고 불리니까, 은퇴 교사인 할아버지와는 동무쯤 되시겠다. 알 길은 없지만, 고양이는 사람을 말 잘 듣는 큰 고양이쯤으로 여긴다는 설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과 고양이는 서로를 돌본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타마도할아버지를 혼자서는 산책도 못하는 양반이라며 못이기는척 따라나선다.
무릎 위에 스스로 올라와놓고 만지면 성질내는 타마, 이부자리에 큰 대자로 누워버려서 새우잠을 자게 하는 타마, 집 안 모서리마다 코 부비며체취를 남기느라 바쁜 타마, 등을 들이대기에 열심히 긁어줬더니 좋아하다가 갑자기 심기가 불편해지는 타마가 꼭 우리 고양이들을 하나로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아서 볼 때마다 큭큭거리며 웃는다.
스스로 밥을 짓고 홀로 식사를 하는 할아버지는 곁에는 어김없이 타마가 뒹굴고 있어서 외로울 틈이 없다. 할아버지의 요리법과 사계절 먹거리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이 여문 할아버지는 이웃이 건네준 깍지콩이나 친구가 갓 잡아온 문어, 밭에서 캔 햇양파를 전통 조리법을 활용해서 소박한 한 끼 식사를 뚝딱 차려낸다.
이웃들도 혼자가 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웃 간의 정이 각별해서 뭍에서 온 과자 한 상자를 나눠먹느라 온 마을을 다 돌고 원래 주인에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웃들과 이런 교류와 나눔이 가능하다면 무척 안심이 될 것 같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홀로 되고 내일을 장담할 수 없을 때에도 동물들이 혼자 남겨질 위험은 없을 테니. 그러고 보면 동네 친구는 어릴 때나 가볍게 한 잔 걸치고 싶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까지도 절실한 존재가 아닌가!
때때로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연애하던 때, 막 교사가 되었을 시기와 아들을 키우고 아기 타마와 만났던 무렵 등 회상 장면이 등장한다. 사람들과북적대며 먹고사는 일로풍성했던시절이 모두 지나버리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여의고 아들을 장가보낸 뒤 홀로 되었다. 계절이 순환하듯 인생도 한 바퀴를 돌아 저물녘이 되었지만겨울도 나름의 낭만과 따스함이 있다. 곁에서 함께 나이를 먹고 있는 고양이와 이웃들도서로를 채워주고 있다.
좋은 시절은 빠르게 지나간다. 때때로 외로움과 허무가 자아를 삼키려 드는 위기의 순간에 고양이들이 두툼한 발을 슬쩍 내민다면? 내 위로 올라와 꾹꾹이를 한다면? 그들의 엉뚱함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지어다.고양이가 요구하는 시중을 받들자면 외로워할 틈이 없고, 애교와 엉뚱미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타마가 온 뒤로는 할멈이 늘 웃게 되었다. 타마가 온 뒤로는 싸우지 않게 되었다. 타마가 온 뒤로는 즐거운 추억만 가득했다.
할아버지가 회상하는 과거는 이러했고, 할머니를 보낸 뒤에도 그럭저럭 타마와 잘 살아가는 중이다. 젊은이라고는 우체부뿐이던 마을에도 젊은 의사 선생과 찻집 부부의 조카가 합류하면서 활기를 띤다. 뒷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하는 한편, 타마와 할아버지의 하루를 거듭 뒤적이며 웃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