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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Nov 22. 2023

미안해, 날 미워해

누군가에겐 나의 이야기가 위로가 될까.

마음이 아프다.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가 마음을 덮고 있는 것 같다. 한 자락 큰 소리로 웃고 나니 더 아파온다. 처참한 마음을 앞에 두고 큰 소리로 웃어 버린 것에 대한 체벌인지 알 수 없다. 꽤 오랜 시간, 그림책으로 마음공부를 하며 만나온 친구들과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욕심이었나 보다. 터져 버린 눈물 끝에 매달려 있는 우울의 보따리는 나의 두 눈과 입을 막아 버렸다.

지금도 듣는 그 말. 네가 하는게 다 그렇지. 하지마.

어쩌면 정말 나는 많이 아픈지도 모른다. 나아서 애를 쓸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아픈 곳을 또 회피하며 괜찮은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늘 그렇게 살아왔다. 괜찮은 척하지 않으면 갖은 모욕을 들어야 했다. 아파도, 다쳐도 모두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죄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칠칠치 못한 것. 어디 가서 맨날 그렇게 쳐 자빠져가지. 뚝 그쳐!"

어릴 때 생채기 난 무릎을 가지고 울며 들어가면 늘 듣는 말이었다. 아파서 끙끙 대는 내게 '지 아비 닮아 엄살이 심하다'는 핀잔이 돌아왔다.


내가 터트려야 하는 감정의 지분을 모두 엄마가 가져갔고 나는 언제나 엄마 속을 썩인 죄인이 되어 있었다. 아시아나 항공의 최종 면접에 합격하고 신체검사를 받은 뒤 벌어진 일에도 나는 엄마의 슬픔에 사죄해야 했다. 내가 본격적인 사회인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하던 그때, ‘신체검사 탈락’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통보를 받고 엄마는 일주일을 침대에 앓아누워버렸다.


나는 집 밖에서 매일 울었다.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터졌고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집에서는 아무렇지 않아야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진짜 괜찮은 줄 알았고 위안을 얻었다. 당신이 잘 키워서 씩씩한 딸이라고. 그리고 이상한 말을 쏟아내며 결국 내 꿈마저 꺾었다.

"니가 비행기 타면 죽을 팔자라 일이 이래 된 건지도 모르니까. 그냥 다른 직장 알아봐라. "

나는 그렇게 꿈을 접었다.   




십 년을 넘게 앓고 있는 한포진으로 고생하다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내 발을 보고 '썩은 발'이라고 말했다. 수치심과 모욕감에 화가 났지만 한 마디도 못 하고 돌아 나왔다. 내 편이 필요했다. 그 의사는 잘못됐다. 그 생각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엄마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게 말했다.


"그래, 썩은 발 맞지. 그런 말 들어도 싸다!"

엄마가 딸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며 사과를 요구했을 때 엄마는,

"니한테 뭔 잘못했다고 사과하라고 지랄이고!"

라며 고압적인 분노를 터트리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뒤로 나는 한동안 병원도 엄마도 끊어버렸다.   


내게는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할 가족이 없었다. 아니, 슬프고 분노할 자격이 없었다. 내 감정의 중심에 내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타인을 향한 이해와 수용이 높고 자기 초월적 성격이 형성된 것일까? 나에게 나란 존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것일까? 슬프고 분노하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올라오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는 내가 싫다. 나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면, 도망칠 수 있다면 나는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나와 헤어지고 싶다.


"엄마, 모든 게 사라지면 어떻게 돼요?"
마리온은 가끔 졸음이 쏟아질 때면 묻곤 한다. 아이는 꿈을 꾸면서 두 발로 나를 누르는데, 마치 내가 거기 있나 확인하려는 것 같다.
"모든 게 사라져도 너랑 나는 여전히 여기 있을 거야“
"하지만 모든 게 사라지는데 어떻게 우리가 존재할 수 있어요?"
"나도 몰라. 그냥 그런 거야."  
<사랑의 중력> 사라 스트리츠 베리
<매미> 숀 탠, 풀빛

수십 번 읽는 구절이지만 나는 아직 답하지 못했다. 내 아이의 옆에 있으려면 내가 온전히 존재해야 할텐데. 모든 것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면 허물을 벗고 날아가 버리는 매미처럼 나는 내게서 멀리 도망쳐 버릴 것이다. 누가 나를 아무리 사랑한다 외친 들 무용하겠지. 나는 자아의 지옥 속에서 저주받은 시지프스처럼 남은 날을 살게 되겠지. 미안하지만, 나는 나를 미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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