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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Nov 29. 2023

겨울을 나는 중.

쌓인 눈은 세상의 소리를 먹었고, 나는 그 속에서 엄마를 생각한다.

해가 깊숙이 들어오는 해사한 가을이 싫었다. 커튼을 닫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식구들이 모두 자신의 삶을 개척하러 나간 아침, 나를 둘러싼 고요가 전운처럼 느껴졌다. 곧 마음속에서 두 진영이 태세를 정비하고 전쟁을 시작할 참이었다. 나보다 먼저 울어버린 전화가 아니었다면, 치열한 전장에서 나는 속절없이 울고 있었을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명랑한 음성이 흘러나와 나를 부른다. 힘들 때면 떠오르는 친구는 마치 나의 텔레파시라도 받은 것처럼 전화를 주곤 한다.


전기 매트의 온도를 올리고 이불을 덮어도 막을 수 없는 한기로 몸을 떨고 있었다. 혹독한 눈보라가 불어 닥친 마음속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먹어버리는 눈이 쌓였다. 적막한 추위 속에서 몸서리 나는 내 삶을 종료하고 싶었다. 선택을 할 수 있다는 희열 만이 오직 나를 기쁘게 했다. 병적인 생각이 시작되면 내가 누구인지, 곁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잊은 채 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 그럴 때면 내가 누구인지 일깨우고 나를 밖으로 꺼내주는 몇 안 되는 친구다.


나의 상황에 깊숙이 들어와 곁에 앉아 있는 친구는 나의 기분부터 묻는다. 계절이 너무 아름다워서 죽고 싶다는 나의 말에 아직도 그러냐는 핀잔 대신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말한다. 입으로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혐오스럽게 느끼던 나는 혼자 잘 챙겨 먹을 테니 걱정 말라며 둘러댔다. 친구는 끼니는 거르지 말라고 거듭된 당부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생각지 못한 다정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나는 이불을 걷고 앉았다.


우울이 잠깐 걷어진 머리로 최근 내 인생에서 덜어내 버린 관계를 생각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는 대신 내가 내린 결론이 잘못되었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그 앞에서 분노하지 못한 나는 끝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죄로 자기혐오에 빠졌다. 내 이해의 한계를 벗어난 사람은 더 이상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내게 있었다. 나는 화내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야 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으로 생존해 간다. 때로 자신의 욕구를 수용받지 못하면 반항하고 떼를 쓰며 이목을 끌기도 한다. 이때 물리적 제재와 정서적 통제를 받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사랑을 거둬버리는 것이 두려워 모든 욕구를 감추는 노력하게 된다. 나 또한 냉소적인 표정으로 쏘아보는 엄마의 눈빛이 두려운 아이였다. 때문에 기꺼이 마리오네트가 되어 먹으라는데로 먹고, 입으라는데로  입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어리석음으로 간주했다. 중학생 때부터 번역가가 꿈이던 내가 대학 전공으로 영문학을 선택했을 때, 엄마는 그 학과 나온 사람 중에 영어 잘하는 사람 하나 못 봤다며 반대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을 때, 엄마는 ‘내 딸은 속도 좋다. 나는 절대로 못 모시고 산다!’ 며 비아냥댔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원에 들어갔을 때, 수유 때문에 약을 먹지 않고 앓는  나를 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집으로 가버렸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을 미워할 수 없어, 타인을 미워한다.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결점을 비추는 상대에게 거울을 들고 있다고 화를 낸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는 순간 상처받을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비롯하는 방어 기제이다. 엄마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그리던 자신의 모습을 내가 이뤄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번역가 대신 아나운서가 되기를 바랐고, 승무원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자신의 실패처럼 받아들였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는 대신 세상 사람들을 욕 했고, 친구를 못 사귀는 나를 탓하며 잘 어울리기를 강요했다. 엄마는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모습은 비추지 못할 망정 자신의 못난 모습만 드러내는 나에게 분노했다. 너 같은 딸 낳아 키워보라며 말을 내지고 스스로를 보호했다.  


마음속이 온통 불안으로 가득 차 있던 엄마는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범죄 소식은 모두 꿰뚫고 있었고 결혼해서 독립 전까지 통금 시간으로 옭아매었다. 어떤 모습의 나도 존재함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가르쳐야 했음에도, 예쁜 아이들의 수명은 짧다는 미신을 핑계로 늘 못생겼다는 말을 일삼았다. 살이 찌면 뚱뚱해서, 살이 빠지면 말라서 보기 싫다고 했다. 걱정이란 명분으로 나를 통제하며 자신의 살얼음 같은 약한 마음을 보호했다. 어린 나는 그런 엄마를 모른 채 사랑을 받기 위해 모든 욕구를 감췄고, 자아를 유실한 채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혐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감정을 오롯이 내게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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