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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Dec 06. 2023

경이의 눈을 가지다

아픔은 이해의 토양이 되었다

배려 없는 눈물은 즐거운 상황에서도 터졌다. 방금 전까지 웃으며 즐거웠던 감정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무거운 슬픔만 내 마음에 들어찼다. 웃음 끝에 눈물이라니. 마음의 병이란 속을 모르는 남을 보듯 나를 보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나를 변호하며 다닐 수 없었으므로, 모든 관계로부터 철저하게 나를 배제시켰다.


선택한 고독 속에 깊이 침잠해 엄마를 생각한다. 내가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당시 부모들은 다 그랬지.'라는 말로 퉁 치기엔 석연치 않았다. 되뇌고, 곱씹는 시간 속에서 또 스스로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나이 사십이나 먹고 아직도 엄마를 원망하는 나약한 인간, 그게 나였다.


심리 상담을 진행하며 선생님은 내게 책 한 권을 권했다. 선생님의 처방은 혼자 있는 시간 속의 내가 나락에 빠졌을 때 잡고 나올 수 있도록 해 주는 동아줄이다. 나는 선생님이 던져 준  동아줄을 붙잡고 책 속으로 들어가 수십 명의 나를 만났다. 부모의 잘못된 육아 방식과 불안정한 애착형성으로 오랜 시간 자신을 갉아먹으며 산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묘연했던 내 병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스몰 트라우마 (스몰 t 트라우마 smal trauma라고도 한다)는 명백하게 멀쩡해 보이는 삶 속에 감춰져 있거나 의식되지 않는 사건으로부터 생겨난다. 스몰 트라우마는 정서적 학대에서 발생하며, 은밀하거나 노골적인 방치에서도 발생한다. (중략)

아이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을 때 마음껏 삶에 뛰어들어 활기차게 살아간다. 안정된 아이는 안정된 성인으로 자라서 사람들과 만족스러운 애착을 형성한다.

반대로 양육자가 욕구를 해결해주지 못하면 아이는 남에게 위로와 도움을 구할 수 없다고 학습하고 두려움과 분노, 슬픔, 혐오감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핵심감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또 아이가 핵심감정을 느낄 때 양육자가 위로하고 달래주지 않으면 아이는 혼자 힘으로 감정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면 불안과 수치심이 생겨나 위험하고, 외롭고,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된다."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힐러리 제이콥스 헨델, 더 퀘스트 2020

책 속에서 만난 나는,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 왜 그토록 지난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불안과 수치심은 내가 무가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양육태도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말이다.  아픔의 당위성을 찾은 것만으로도 마음의 몸살은 한결 나아졌다. 시시덕거리며 웃는 나에게 '잘한다. 마음속에 엄마를 향한 원망과 미움은 한가득 쌓아놓고 한가롭게 쳐 웃고 앉아있네.'라는 말로 힐난하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는 나와 자신을 동일 시 하며 당신이 그려놓은 이상적 자아를 내가 실현해 주길 원했다. 곧게 그어 놓은 선 위에서 한 발짝도 비켜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미숙한 내 모습에 당신의 못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불같이 화를 냈던 것일 테다. 자신에게도 미숙하고 못난 모습이 있다고 인정하는 대신, 자기 뱃속에서 이상한 딸이 나왔다며 철저하게 나를 부정하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누구보다 마음이 유약하고 나약했던 엄마는 당신을 미워할 수 없어 나를 미워했다.

내 안에 아직 엄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자식은 부모를 맹목적으로 완전히 사랑하니까 이 감정 또한 미운 감정만큼 당연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일흔을 앞둔 엄마가 지옥 같았을 당신의 마음과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온 날들에 대해 경이를 표한다. 그리고 과거의 엄마도 지금의 엄마도 모두 내 엄마로, 온전한 한 존재로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고 싶다.


다만 물려받은 감정들은 내 것이 아니므로, 이제는 털어낼 일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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