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낯섦
십오 년 전 가을. 대전에서 부산으로 날 만나러 온 낯선 남자를 데리고 소문난 스파게티집을 찾았다. 골목에 숨어 어렵사리 닿았건만, 하필 그날 문을 닫았다. 남포동. 번잡한 길 위에서 갈 곳 잃은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쌀국수 드실래요?”
선입견으로 입 대지 않던 메뉴. 그러나 가릴 여지가 없었다. 먼 데서 온 낯선 사람이 돌아갈 기차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환하게 불을 밝힌 가게 안은 분위기가 무척 좋았고 때마침 빈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양지 쌀국수와 파인애플 볶음밥을 시켰다. 넘쳐나는 소음에 묻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시종 웃는 남자 눈매에 나도 따라 웃었다. 낯선데 어색할 틈 없이 시끄러워 다행이었다.
주문한 메뉴가 식탁에 차려졌다. 남자는 김이 자분자분 오르는 쌀국수를 푸짐하게 덜어 내 앞에 놨다. 그날 처음으로 내 인생에 끼어든 낯선 것들 모두 만점. 나는 남은 국수를 다 달라고 했고 남자는 기꺼이 양보했다.
첫 만남을 계기로 나는 낯선 남자와 친해지기로 했다. 자주 쌀국수를 먹으러 다니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리고 남자의 아버지 무덤가에서 결혼을 약속했다. 처음 밥 먹었던 식당은 이제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함께한 시간은 그 뒤로도 차곡차곡 쌓였다. 둘은 넷이 되었고 그때 보다 나이를 먹었고 마음이 깊어졌다.
세상도 사람도 변하지만 결국 좋은 방향으로 향한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변해가는 우리 모습에 안도한다. 함께 한 십오 년처럼 앞으로 함께 할 수십 년 동안 서글서글한 눈웃음 닮아가며 늙어가겠지. 그날의 설렘이 그리울 만큼 마음이 무뎌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 마음 안에 서로를 파주 하며 살아간다. 첫눈에 반했던 그 모습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