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보자, 옆구리 터지지 않도록
어린 시절, 소풍 전날이면 엄마는 김밥 재료 준비로 분주했다. 해 먹이는 의지가 유독 남달랐던 엄마는 계란말이와 지단을 함께 부쳤고 햄과 볶은 소고기를 빼놓지 않았다. 철 따라 달랐지만 오이나 시금치 한 가지가 꼭 들어갔고, 우엉, 어묵, 당근, 맛살까지 총 아홉 가지 재료로 김밥 한 줄을 말았다. 얇게 편 밥 위로 올라간, 속 재료가 알찬 김밥은 들어간 가지 수만큼 화려한 색을 뿜어냈다. 손이 큰 엄마가 삼시 세끼는 물론 다음 날달걀물을 입혀 구워 먹어야 할 만큼 많이 싸는 바람에 동생과 나, 아버지는 다음 소풍 때까지 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김밥을 먹었다. 소고기와 우엉조림 맛이 진진하게 남았던 엄마표 김밥을 나는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김밥에서 제일 중요한 재료가 있다면 나는 단연 단무지를 꼽는다. 우엉채와 당근채가 그 아성을 넘보지만 아삭하고 새콤달콤한 매력을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계란말이 김밥, 소시지 김밥, 샐러드 김밥, 후토마끼 등 나 어릴 적엔 볼 수 없던 김밥들이 수십 가지 나왔지만 김밥 맛의 성패는 단무지 유무로 갈렸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은 김밥 속 단무지를 두고 하는 말인 듯. 계란말이, 오이, 우엉, 당근과 맛살을 넣고 큼직한 단무지 한 줄기 넣어 말은 우리 동네 분식집 김밥은 도드라지는 재료가 없어 내 입에 딱이다.
이런 단무지를 직접 만들어 쓰는 식당이 있었다. 유기농 김밥이라 당당하게 써 붙인 식당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딸과 부모님이 운영하는 김밥 전문점으로, 가족 모두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첫째가 음식 알레르기로 외식이 어렵던 그때, 유기농 무를 공수해 빨간 비트 물을 들여 담근 수제 단무지 김밥은 내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비록 달걀도 고기도 뺀 아기 김밥이었지만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달걀, 우유, 유제품, 콩, 밀가루, 견과류. 여섯 가지 재료를 식이 제안하며 외식은 꿈도 못 꾸던 우리에게 단비 같은 식당이었다.
쌀부터 참기름까지 국산 유기농만 고집하던 식당은 다른 김밥 전문점에 비하면 월등히 비쌌다. 천 원이면 김밥 한 줄 먹던 그 시절, 기본 김밥이 사천오백 원, 돈가스나 새우튀김, 소고기가 추가되면 오륙 천 원이 훌쩍 넘었지만 아이 키우는 엄마들뿐 아니라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 많은 어른, 주변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집에서 꽤 멀었지만 내가 세끼 돌밥에 지칠 때면 식당을 찾았다. 붉은 단무지와 노란 지단, 심심한 재료가 어우렁더우렁 엮여 말린 김밥은 그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조화를 품고 있었다.
첫째의 식이 알레르기는 크면서 하나 둘 좋아졌다. 처음엔 콩과 밀가루, 그리고 계란. 일곱 살 무더운 여름날 우유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고 나는 의사 앞에서 방방 뛰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친구들과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을 더는 참지 않아도 되니까. 식이 제안이 풀리자 외식 반경이 넓어졌다. 세상은 넓고 맛집은 많다는 남편 말대로 우리는 식당 찾아다니는 재미를 누렸다.
그래도 주말이면 꼭 김밥집에 들렀다. 코로나로 일상이 정지되기 전까지. 팬데믹이 몰아넣은 부엌에서 세끼 식사를 준비하며 김밥 생각이 얼마나 간절하던지. 어느 날 세간의 눈총을 뚫고 찾아간 식당에서 유기농 김밥 사업 가족은 씁쓸한 미소로 우리 가족을 맞았다.
“장사가 안돼서 월세를 못 내는데 세를 올린다고 하셔서... 다음 주말까지 영업하기로 했습니다.”
아이 식이 제안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함께 기뻐하던 분들을 코로나로 잃었다.
지난 5월 키가 불쑥 자란 아들은 변성기와 이차 성징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속에 많은 고민을 담기 시작했다.
“엄마, 나는 왜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지? 그렇다고 공부를 아주 잘하지도 않는 것 같고. 내 뒤에 앉은 애는 벌써 중학교 수학하는데 나는 이제 6학년 수학하고. 어떤 친구는 축구를 잘하고, 어떤 친구는 수영을 매일 다니고, 어떤 친구는 글쓰기로 상도 받는데 나는 그런 상 한 번 못 받았어. 피아노는 너무 늦게 시작한 거 같고, 운동은 이것저것 하다 말고. 나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는 걸까?”
아들 마음이 춘풍에 오르내린다. 어느 날은 하늘 찌르는 허세로 오만하다가 어느 날은 저 밑바닥으로 처박혀 버린다. 그런 자기 상태를 함께 바라보며 지극히 정상으로 자라는 아이를 격려한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것을 함께 헤아려 본다. 잘하는 것 하나에 웃음 한 번, 다른 친구와 비교는 금물이라고 조언 한 번. 그러자 한숨 한 자락 내쉬더니 숙제 많은 학원에서 공부하고 싶단다.
“진심이야?”
“어, 나 영어 단어 시험 볼 때마다 스펠링 틀리는 것도 스트레스고, 영어 지문 읽을 때 빠르다고 선생님한테 혼난단 말이야. 그리고 나는 수학이 좋고 나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중학교 수학 문제 보니까 나도 풀어보고 싶더라고. 그런데 한 번 봤는데 안 풀리니까 나는 수학 못 하나 그런 생각만 들고.”
영어 원서 읽기 1시간, 수학 1년 선행 독학 및 아빠와 토론, 한국사, 한자, 국어 문제지와 영어 필사와 독해 문제지까지. 어쩌면 학원보다 많은 양인데, 아이는 친구들이 가는 방향과 조금 다른 자기 길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콧구멍까지 솟구치는, 하라는 거나 잘하라는 잔소리를 꾸역꾸역 넣는다.
“저녁에 네가 먹은 참치김밥 말이야. 들어간 재료들이 제각각 개성을 뽐내지 않지만 한데 어우러져 맛있는 김밥이 되잖아. 그런 것처럼 네가 가진 강점과 약점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너라는 사람이 되는 거야. 학원에서 배우면 빨리 배우지만 네 강점과 약점을 알 수 없고 네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알 수 없어. 그런 공부는 나중에 구멍이 터지게 되지. 억지로 말면 터지는 김밥처럼 말이야.”
두 시간 넘도록 이야기 나누고서야 잠자리에 든 아들을 보다 유기농 김밥 사업 가족이 생각났다. 지금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지내실까? 폐점 소식에 그동안 고마웠다고 김밥 그림을 선물하던 아가는 자아를 찾기 위해 이제 막 시동을 걸었다고 전하고 싶은데.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김밥이 떠 오른 건 어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일까? 이제 조금씩 내 품을 벗어나 자기 세상으로 들어갈 아들과 작별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할 용기가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 옛날 엄마가 싸주던 김밥을 미련스레 먹던 나처럼 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말미를 원하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자기 안에 있는 재료를 하나씩 찾아 마음으로 감싸는 동안 말없이 격려하는 엄마가 되고 싶으니까. 아이 춘풍에 함께 오르내리던 내 가벼운 마음에 진중한 사랑의 추가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