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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Feb 12. 2023

아빠의 계란말이

남편님들, 주말에는 요리사가 되어보세요.

강이 카페 놀이를 하자며 놀이방으로 이끈 바람에 그곳에서 무지개 주스와 무지개 볶음밥을 대접받고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속에 뛰어든 나는 눈과 귀가 모두 중세로 가버렸다. 소설은 삼총사와 다르타냥이 복수를 항해 숨 돌릴 틈 없이 달리는 절정의 정점에 달하고 있었으므로 그 길을 함께 달리며 무아지경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겸과 강이 우르르 뛰어들어 나를 흔들었다. 밥을 먹으러 나오란다. 엥? 웬 밥? 시계를 보니 두 시.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바람에 멋쩍게 나왔더니 식탁 한가운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말이가 단정하게 놓여있다. 내가 책 속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남편이 나를 대신해 밥을 짓고 점심을 차린 것이다.


나는 12년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 그래서 가끔 애매한 상황에서 어머님의 눈치를 살펴야 할 때가 있다. 남편이 설거지할 때 그 주위를 맴도는 우리 어머님은 혹시 당신 아들이 설거지할 것 같으면 얼른 당신이 먼저 해버리신다. 반면 며느리가 설거지할 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가신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들이 밥상을 차리면 정말 대견해하신다. 사십육 살 아들이 해 주는 진지가 행복하신가 보다. 오늘도 개며느리는 어머님 표정을 살펴 얼굴이 활짝 핀 걸 확인하고선 뻔뻔하게 식탁에 앉는다.


겸과 강은 한껏 들떴다. 분명 밝히지만 솥뚜껑 운전 12년 차, 까다로운 여든넷 어르신의 입맛을 찰떡같이 맞추는 나의 음식 솜씨는 꽤 수준급임에도 늘 남편의 밥상에 밀린다. 아빠는 칼질 하나 제대로 못 해 요리 하나에 한 시간이 걸리는데 온갖 야채와 스팸을 다져 넣고 치즈와 함께 돌돌 말아 놓은 계란이 신기한가 보다. 아빠의 밥상이 차려진 날이면 겸은 남편이 해놓은 음식만 먹는다. (아, 그런데 나도 먹고 싶다, 아들아! )


남편들은 알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밥상은 당연하지만 아빠의 밥상은 환상의 마법 밥상으로 다가 온 다는 것을 말이다. 똑같이 만들어 올림에도 내 계란말이에는 채소가 들어갔다고 툴툴대지만 남편의 계란말이에는 채소가 들어갔다고 감동하며 먹어댄다. 마법의 도가니 속에서 아이들 역시 마법 같은 식욕을 끌어올려 밥을 먹는다.


시어머님도 아이들과 같은 기분을 누리시는 듯하다. 당신 아들이 손수 지은 밥과 계란말이에 연신 감탄하시며 드신다. 나? 여자들은 다 공감할 것이다. 내가 안 차린 밥상은 다 꿀맛이다. 그래도 곧 다가오는 내 생일상 미역국은 밀키트 말고 정식으로 끓인 미역국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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