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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Feb 25. 2023

아침 일찍 뭐 하시나요?

저는 자요.

아티스트 웨이가 열풍이다. 나도 가까운 선생님께서 추천하셔서 처음 접했던 책, 구매는 했는데 아직 책등만 보고 있는 책이다. 처음에는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이유와 매일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제시한 책이라 생각했는데 아티스트 웨이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닝 페이지’라는 것을 쓰고 있었다. 모닝 페이지란 아침 일찍 일어나 3장 정도의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으로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쓴다. 아침 8시 기상도 힘든 나는 책을 책장에 고이 모셔 둘 수밖에 없었다.


육아빠 정우열 원장님도 자고 일어나면 모든 감정이 초기화되기 때문에 악어 엄마가 되지 않으려면 양질의 수면을 아이들과 함께 취하고 새벽 4시~5시에 일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책 읽기, 글쓰기, 운동, 공부 등 하고 싶었던 일을 몰입해서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도 이 새벽 시간 활용으로 책도 내시고 많은 업적을 이루신 걸 보며 같이 해보려고 애써 봤지만 전 날 몇 시에 자든지 새벽 5시에 일어나면 어느 순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깔끔하게 접었다. 황새가 아름다워 보인다고 주제 파악도 하지 않은 채 따라 하면 가랑이 찢어진 뱁새 꼴 나는 건 만국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로 나는 내가 뱁새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새벽 기상을 루틴으로 확고하게 잡으신 분들에겐 내가 참 한심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힘들지만 그렇게 빨리 포기해 버릴 것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이런 비난에 몇 가지 변명을 보태어 보겠다. 첫 번째 나는 성질 급한 샛별이 뜬 초저녁 5시에 잠이 쏟아지고 이후 각성이 되면 새벽 2~3시까지 잠이 오지 않는다. 특히 겸과 강을 공동육아로 키우면서 오후 4~5시면 직접 터전으로 하원을 가야 하므로 가장 피곤하고 졸린 시간에 운전을 해야 하는 일상의 위기를 매일 수년 겪다 보니 정작 잠을 자야 하는 밤 10시~11시면 정신이 새하얗게 맑아져 버린다. 안타깝게도 내가 미라클 모닝을 하려면 저녁 시간을 모두 포기하고 초저녁 5시에 잠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두 번째 그래서 밤늦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잠이 안 오는 밤 펼친 책으로 내 독서력을 유지하고 있다. 페스트, 이방인, 사랑의 중력과 같은 소설은 자고 싶어 펼쳤다가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책들이고 총 균쇠 완독의 배경에는 밤잠을 이긴 독서 덕분이다. 20대 때 싸이월드 일기장에도 항상 새벽 2~3시에 게시물이 올라갔는데 좋아하는 음악을 한없이 들으며 반반한 모니터 앞에 앉아 백지에 글자를 한 올 한 올 새겨 넣으며 북받치는 감정에 참 많이 울기도 했었다. 하루 동안 몰아치며 나를 쥐락펴락했던 감정들을 모두 글 속에 털어내고 잠들면 그날은 양질의 수면을 취했다. 때로 밤에 쓴 글을 아침에 보면 낯 뜨거울 정도로 감성적일 때도 있지만 벌건 대낮에 글을 쓰면 아무래도 내 심연의 이야기는 그러모으기 힘들었다.


세 번째 결혼 후에는 일찍 일어나도 일정 시간이 되면 가족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준비해 주는 것 또한 나의 일이므로, 아침 시간은 오히려 가족들을 위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 시간에 폭풍 같은 감정을 마주하며 글을 쓰고 나면 아마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나의 삶을 더는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흐름이 끊어지는 것을 꽤 싫어하는 나는 글이든 책이든 정해진 시간만큼만 쓰거나 읽는 것이 압박으로 느껴져 정신만 산만해지는 바람에 아무 것도 못 하는 날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늘 긴 시간 집중할 수 있는 밤 시간을 선택하게 된다.


밤늦은 시간을 잠 대신 루틴으로 소비하는 나에 대한 변명을 쓰고 보니 그 일상의 사유가 선현 하게 다가온다. 이런 이유로 내가 밤늦도록 글을 쓰고 책을 읽었구나, 모두가 외치는 미라클 모닝과 모닝 페이지에 함께하지 못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게으른 의지박약인이라고 자괴하던 때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렇게 잘하고 있었다. 앞으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게으름이란 프레임을 거부하고 부지런함에 나만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겠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성에 관심이 쏟아지는 21세기에 새벽종이 울리고 새 아침이 밝았으니 일어나서 마당이라도 쓸어야 부지런하다고 인정받는 건 정말 편협한 발상이다.


나는 아티스트 웨이 말고 마이 웨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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