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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Mar 22. 2023

달콤한 딸기향에 취하다

요망한 계절이 가져온 제철 채소

딸기향 그득한 계절이다. 벚꽃이 만개하기 전까지 내 코를 간지럽히는 딸기들. 아기 설향이 1킬로 6000원대이니 제철은 제철인가 보다. 매년 몸값 비싼 달콤한 설향은 먹기 바빴고 1킬로 3000원 하는 땡딸기로 프리저브드 잼을 만들었는데 올해는 착한 설향 가격에 홀려 3킬로로 딸기청을 만들었다.


어떤 과실이든 청을 만드는 건 복잡하지 않다. 잘 썰어 설탕과 버무리면 끝이니까. 하지만 설탕과 과일이 만나기 전까지 전처리 과정은 상당히 까다롭다. 청이든 잼이든 물기는 한 방울도 허락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레몬사과청을 만들 땐 사과와 레몬 하나하나의 물기를 일일이 닦아야 한다. 또한 열탕 소독한 병과 뚜껑도 바싹 마른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중에 판매하는 병아리 눈물만큼 담긴 수제청, 수제잼 가격이 그토록 어마어마한 것이다.


딸기는 좀 더 까다롭다. 과육이 물러 닦을 수 없으니까. 깨끗이 씻은 딸기는 실온에서 물기가 빠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그렇다고 다음 날 해버리면 물러지고 썩어 절반은 베어 버려야 하니 적정 시간 내 다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에게 감기가 옮았는지 어제부터 나도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딸기의 골든타임을 잘 살려야 했기 때문에 누워있을 수 없었다. 물 빠진 딸기의 꼭지를 칼로 베어 낸 다음 열심히 으깨어 사탕수수가루를 녹이고 그 위에 올리고당 막을 씌워 냉장고에 넣었다. 글은 단 몇 줄인데 과정은 많은 시간과 고된 노동을 요했다.

냉장고에 들어간 딸기청의 시간이 12시간 흘렀다. 가족들에게 대대적으로 알렸다. 오늘은 생딸기 우유를 디저트로 주겠노라고. 숙성된 딸기청을 열탕소독한 병에 다 옮겨 담고 남은 딸기청을 곰돌이 유리잔에 담았다. 하얀 우유는 빨간 딸기청을 만나 그야말로 딸기우유색을 입는다. 어여쁜 그 분홍이 꼭 봄을 닮았다. 한 잔을 마신 가족들 얼굴도 꽃이 활짝 폈다. 그런데 이 꽃들은 좀 요란하다. ‘한 잔 더!’를 외치고 맛있다고 난리였으니까. 행복에 젖은 “맛있어” 노래를 들었으니 노동값은 톡톡히 받았다.


봄은 온갖 꽃과 아름다운 하늘로 마음을 뒤흔들고, 뿌연 미세먼지와 독한 감기로 환장하게 하는 요망한 계절이다. 하지만 그중에 제일 요상스러운 봄은 아마도 과일인지 채소인지 헷갈리는 딸기가 아닐까? 채소라 하기엔 너무 달콤한 딸기, 3킬로 더 사서 잼 만들어야겠다. 딸기 많이 먹고 올해도 사랑과 존중이 넘치는 우리 가족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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