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의 순간,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비둘기가 보여주는 삶을 살아내는 방법

by 별글이

어느 날, 신호를 받아 정차된 길 왼편으로 걸린 대형 현수막을 보았어요.

유해 동물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저는 비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새는 좀 무서워요. 어린 시절 우연히 본 공포영화에서 새들이 사람의 눈을 공격하는 장면이 뇌리에 콱 박혀 있거든요. (어쩜 그 시절엔 애들이 있어도 그런 걸 보셨는지) 더군다나 그 아이들이 날개를 퍼드덕 거릴 때 마다 수십만가지의 박테리아가 떨어져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욱 더 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겸과 강은 바닥에 내려앉은 비둘기를 참 좋아해요. 소리내며 따라 걷는 것도 좋아하고 쫓아 다니며 술래잡기 하는 것도 참 좋아합니다. 자주 가는 병원 앞 공원에서 비둘기들을 만나면 그렇게 기뻐하며 따라다닌답니다. 그럼 저는 잠깐 넋놓고 벤치에 앉아 바라 보고만 있으면 되지요.


그런 내 육아동지가 언제 유해 동물이 된 걸까요? 좋아하지는 않아도 고마워 하고 있었는데. 비둘기만 보면 세상 떠나 갈 것 처럼 소리지르는 내 친구들이 있지만 무서운 것과 해로운 것은 의미가 다르잖아요. (주고 받는 것 없이 싫은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뉴스를 찾아봤어요.


사람을 봐도 피하지 않는다, 똥이 쌓이면 냄새 때문에 골치 아프다, 실외기에 둥지를 튼다 등등 비둘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가득 나오네요. 이런 이유로 오늘도 비둘기는 미움을 받습니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비둘기는 88올림픽 개막식 때 날려 보낸 집비둘기 2,400마리의 후손들 이래요. 뛰어난 번식력으로 개체수가 급속하게 늘게 되며 토속종인 멧비둘기를 재치고 우리 삶 깊숙히 찾아 온 것이라고 합니다. 비둘기 입장에서 보면 참 억울할 일이네요(둘기둥절). 열일 시키며 날려 보낼 땐 언제고 골칫덩이 유해동물이라고 하다니.

고정순 그림책 만만한 책방

그런데 여기 비둘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 보고 그린 그림책이 있습니다. 고정순 작가님의 그림책 인데요, 작가님의 그림책은 전하는 메시지가 제 생각의 방향을 틀어줄 정도로 힘있게 다가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품이 많답니다. (물론 순수한 열정을 가진 작가님 자체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요. ) 오늘 그림책도 새에 대한 나의 공포와 무심함을 따뜻한 관심으로 바꾸어 준 [나는, 비둘기] 입니다.

하늘을 날던 비둘기 한 마리가
나무에 내려앉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에
날개가 걸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비둘기-
나는, 비둘기 중에서

그렇게 비둘기는 "새" 라는 고유성을 잃게 됩니다. 날지 못 하게 되었지만 부지런히 걸어다니며 먹이를 찾아 다닙니다. 어느 날엔 눈 먼 늙은 쥐에게 먹이를 나눠주기도 하지요. 앞을 보지 못 하는 쥐는 비록 비둘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지만 비둘기의 소원을 진심으로 응원해 줍니다.

나는 네가 나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날개로
날 수 있기를 기도하마.
-나는, 비둘기-

비둘기는 쥐 아저씨의 응원을 마음에 품고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 날도 열심히 먹이를 찾으러 다녔지요. 그저 열심히 먹이를 찾으러 다닌 것 뿐인데 비둘기는 다리 한 쪽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비둘기에게 어느 날 검은 비닐봉지가 날아듭니다. 성가실 정도로 쫓아다니는 검은 비닐 봉지를 바라보다 퍼뜩 눈 먼 늙은 쥐가 해 주었던 말을 다시 떠 올려봅니다 그리고 검은 비닐봉지와 한 다리로 계단 오르기 연습을 시작합니다. 드디어 그 날, 비둘기는 부푼 가슴을 안고 높은 건물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다시 돌아 갈 수는 없습니다.

나는, 비둘기 중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전구를 두른 나무는 우리에게는 즐거움을 주지만 비둘기에게는 날개를 뺏은 흉기가 되었습니다. 길바닥의 깨진 유리 조각들은 신발 신은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비둘기의 다리를 뻬앗아 갔지요. 불현듯 날아든 검은 비닐 봉지가 목에 감겨 버렸지만 비둘기는 성가신 비닐 봉지를 뺄 수 없었어요. 그럼에도 꿈을 꾸며 열심히 오늘을 살아냅니다.

실제로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여 한 쪽 다리를 잃고 다니는 비둘기를 보며 이 이야기를 만든 작가님은 이후 길에 유리나 날카로운 것들을 치우며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다리를 다친 비둘기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셨어요.) 뚱뚱해서 날지 못 한다고 닭둘기라 부르는 비둘기들이 사실은 날개를 잃어 날지 못 하는 아이들일 수 있지요. 우리가 조금만 배려했으면 비둘기는 이렇게 많아지지도 날개를 잃지도 한쪽 다리를 잃지도 않았을 것 입니다.


그렇지만 비둘기들은 그저 묵묵히 오늘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미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요.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 일까요? 미국에선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비둘기 개체수와 "함께 살기 위해" 생식 억제 모이를 주고 스위스는 알을 가짜알과 바꿔 두고 프랑스에서는 비둘기 관리를 위해 큰 둥지를 만들어 두는 등 비둘기와"상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비둘기를 원망하는 대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 좋겠어요.


작가님은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 비둘기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와도 닮았다고 하셨습니다. 작가님도 다리가 불편해서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참 어렵다고 하셨지요. 마지막 높은 건물을 올라가는 장면의 유턴금지 표지판은 실제로 배경이 된 곳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꿈을 위해 발을 뗀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작가님의 이야기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비둘기라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전의 저는 스스로 구하지 못 했다는 죄책감으로 힐난하며 절망 속에서 살았을꺼예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이유들의 원인을 모두 제게 돌리는 사람이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삶의 고비가 올 때 마다 제 손을 잡아주는 친구들과 그림책으로 마음의 샤워를 하지요. 저는 오늘도 비둘기처럼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꿈을 꾸며 살고 있습니다.


절망에 빠진 내 마음은 내가 잘 달래 주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함께 진창에 구르는 시간도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결국 있는 좋은 일들을 찾아 주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수용의 마음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마음만이 내 세상과 삶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꼭 기억해 주세요. (저도 아직 잘 못 합니다.)


[그림책이 주는 메시지]

: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비둘기처럼 포기하지 마세요. 꿈을 꾸며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행동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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