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어려울 때

무무씨와 달그네를 타세요.

by 별글이

여행 가기 좋은 계절입니다. 이미 가서 열심히 기록을 남기는 친구들도 있고, 오늘 출발한다는 기록을 남긴 친구도 있지요. 이번 여름은 이름이 좀 거시기한 고래불 해수욕장에 다녀온 것이 전부라 좀 많이 부럽습니다. 눈치 없는 코로나도 막을 수 없는 그들의 발걸음이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방구석에서 브로드웨이를 구경하고 보스턴 앞바다 고래도 만나고 제주로 떠나는 비행기에 함께 몸을 실으며 마음을 달래 봅니다. 도서관 봉사가 있는 날이라 아침 일찍 겸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는 일상 여행 중이라는 신념(?)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옮겨봅니다. 햇살이 내리는 거리 사이사이 산뜻한 체온의 바람이 욜랑 욜랑 저와 겸의 몸을 휘감고 달아납니다. 이토록 개구진 바람이 또 있을까요?

고정순 그림책, 달그림

들어 있는 도서관을 깨우는 시간. 불을 켜고 스위치를 올리고 기계들을 작동 시킵니다. 앞, 뒤로 나 있는 창문과 출입문을 열어 밤 사이 가라앉은 먼지들도 바람에 실어 보내지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도서 회수함으로 갑니다. 보통 연체로 반납하기 민망한 책들이 많이 들어 있어요. 꽤 많은 책을 들고 반납을 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하루 이틀 늦은 책들입니다. 그 책 무리에서 고정순 작가님의 에세이집을 발견합니다. 제가 7월의 책으로 추천했던 그 책. '오늘 책은 이거다!!' 하며 냉큼 빼두었습니다. 대충 일을 정리하고 자리 잡아 앉아 읽다 보니 작가님이 너무 보고 싶네요. 작가님은 화실에 다니시며 그릴 것이 없으면 달이라도 그렸다고 하십니다. 그 말이 왜 깊이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작가님의 [무무씨의 달그네]도 보고 싶어 집에 가자마자 책장을 뒤졌습니다. (사실 밥을 먼저 먹었습니다.)

무무 씨의 달그네
친구 마니에게.
잘 지내지?

무무씨의 작은 구둣방은 오늘도 북적북적 합니다. 달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 구두를 닦으러 왔거든요. 요즘 부쩍 달로 떠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말수가 적은 무무씨는 여행으로 달뜬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반짝반짝 구두를 닦아 줍니다. 빵 굽는 달풍씨, 시계 수리공 새새씨, 낯설고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가 가득한 친구들.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들어주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무무씨는 일이 끝나면 차 한 잔과 함께 달을 보며 마니에게 편지를 씁니다.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달이 있어서
이곳이 지겹지 않은가 봐.

때로 무성한 달의 소문을 듣는 날이면 무무씨는 마음속 달나라에서 걸음이 느린 여행을 합니다. 그런 무무씨에게 낯선 여행객이 찾아와 이렇게 물어봅니다.

무무 씨의 달그네
당신은 달에 가고 싶지 않나요?

무무씨는 대답 대신 그저 조용히 웃었답니다. 친한 친구 용용이도 찾아와 물었어요. 왜 달에 가지 않느냐고. 무무씨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용용이를 배웅합니다. 용용이가 달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때 이야기해 주겠노라 다짐하지요. 조금 쓸쓸해진 무무씨는 달이 잘 보이는 곳에 그네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달은 그네가 흔들릴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보여요. 무무씨가 삼킨 그 말이 무엇인지 짐작되시나요?


에세이를 보니 작가님은 달이 있어 어둠의 공포를 극복하셨다 하셨어요. 제일 첫 장에 나온 이야기였지요. 저도 깊은 밤의 어둠에 심장이 쿵쾅거릴 때 창을 뚫고 흘러드는 달빛에 위안을 받은 적이 많아 작가님의 안도가 무엇인지 공감됩니다. 달이 뜬 날은 아이들에게 "달이불 덮고 자자"며 잠자리를 재촉하기도 하지요. 그럼 아이들은 유리 너머로 쏟아지는 달을 신기해하며 창문 앞에 붙어 버리지만 어쨌든 지구에서 달을 볼 수 있어 저도 작가님도 무무씨도 참 다행입니다.


부끄럽게도 물욕이 많은 저는 이십 대 때부터 바라만 보던 가방을 드디어 가지게 된 날을 기억합니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가방이 제 삶에 들어오는 순간 볼 수 없어졌지요. 그토록 소원하던 가방이 아닌 그냥 '제 가방' 이 되어버렸거든요. 어쩜 그렇게 확 깨던지. 그 뒤로 쇼핑에 대한 감흥이 사라져 버렸어요.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 또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어요.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요. 친구가 전화로 운동 삼아 다니는 댄스 학원 관장님을 엄청 욕 한 날이었어요. 한 시간을 듣던 저는 확 질린 나머지 '그냥, 관 둬!'라고 말해버렸어요. 저는 성격상 그 정도 불만이 터져 나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끊어버리는 성격이라 ‘그게 맞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친구가 화를 내며 말했어요.

"아니, 내가 지금 너한테 그런 말 듣자고 이야기한 줄 알아? 결정은 내가 하거든?"

그때 저는 뒤통수가 너무 아파 무안했고 이해가 되지 않아 입으로 미안하다 대충 말하고 끊어버렸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무무씨 같은 친구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들을 배려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삼킨 무무씨 말입니다. 때로는 그저 들어주는 행위가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그때 알았더라면 그 친구와 어색한 끝을 보지 않았겠지요.


적당한 거리에서 달을 바라보는 행복을 아는 무무씨를 만나고 싶어요. 아직 누군가에게 보이기를 신경 쓰는 저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목과 언행에 휩쓸리지 않는 무무씨를 닮고 싶지요. 편견과 아집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다름을 들리는 소리 그대로 존중해 주는 무무씨의 배려를 배우고 싶어요. 내가 선택한 것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며 허락된 시간 동안 그네를 타고 달을 보며 사는 무무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나의 달을 바라보며 나의 마니와 함께 고요한 축제를 열고 싶습니다.


혹시 사랑이 버겁고 복잡하다 생각하나요? 당신의 마니와 친구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가요? 그럼 무무씨와 달그네를 타고 이야기 나눠보세요. 무무씨는 다 알고 있답니다.


� 그림책이 주는 메시지

: 사랑은 무무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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