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정신과 상담 이야기
평소에 나는 무덤덤하게 있는 편이다. 하지만 간혹 어떤 상황에 처하면 크고 작은 화를 잘 냈다. 또 짜증 섞인 말투를 내뱉는 것도 잘했다. 무미건조한 일상 생활 혹은 혼자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안됐지만, 연애와 같이 감정적인 상황이 될 때는 가끔 문제가 됐다.
요즘 흔히 거론되는 '분노조절장애'급은 아니라는 점에서 주변 사람들과도 이 문제를 잘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나한테는 엄청 큰 문제는 아니지만, 내면에서 스스로 계속 고민되는 점인데 이게 잘못 전달됐다가는 다른 사람이 확대 해석할 여지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신경정신과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이건 과거사라던지 어떤 기폭제 역할을 하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더 좋은 병원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귀찮아서 그냥 가까이 있고, 평점이 무난한 병원을 찾아갔다.
토요일 오전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매우 조용했고,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화이트 색상의 가구들과 몇 개의 방으로 이뤄진 사무실 같은 병원이었다. 의사 선생님과 만나기 전 간호사는 내게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했다.
차근 차근 설문을 다 마친 후 몇 분 기다리니 선생님과 독대의 시간이 다가왔다. 선생님의 첫 말은
"제가 살펴보니, 병원에 올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이나 병력은 없으신 것 같은데 어떤 이유에서 오셨나요?"
"제가 너무 화가 많은 것 같아서요. 잘 참아지지도 않는 것 같은데 전 이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후에 약 30분 정도를 이야기 한 것 같다. 나의 과거사 이야기부터 화를 참지 못했던 몇몇 사건들, 날 화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또한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상당히 어조가 차분했다. 그 말들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화를 안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화를 참으려면, 아무 말도 하지말고 참으세요. 만약 그게 안될 것 같으면 그 자리를 피하세요. 잠시 밖으로 나가던지 아니면 그냥 그 자리를 피해서 집으로 가세요~"
처음에는 뭐 이런 결론이 다 있나 싶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내가 어렴풋이 추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이를 테면 유년의 기억이 이런 작용을 하는 겁니다, 이런 특정 부분에서는 참기가 힘들 것이니 조심하세요 등) 생각했지만, 너무 평범한 조치가 나와 놀랬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혹시 지금도 힘들다면, 항우울제를 지어 드릴 수는 있어요"
"아니요. 그건 괜찮습니다"
나는 그 길로 병원을 나왔다. 병원비도 싸지 않았는데 약 처방도 받지 않고, 원하는 답도 못얻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집 한켠에 있는 나의 슈퍼싱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과연 나는 무슨 일을 한 것인가.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봤더니.
'살면서 화가 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까?, 그걸 통제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겠네...'
'만약 내가 화가 많이 나는 사람인지를 알면 다음에 화가 안날까?'
'그것도 아닐 것 같네....'
아직도 그 분이 실력있는 의사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생각할 수록 내가 생각하는 문제의 해결방법이 있다면, 그건 내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이고, 그럴 수 없다면 참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니 결국 그 의사의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가끔씩 말을 참아보거나 속으로 숫자를 세며, 참아본다.
참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까먹거나, 남들은 모른 채 넘어가는 때도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이후에 다시 또 그 정신과를 찾아가지 않은 점이다.